그림 이야기
카라바조, 공방 없이 유럽에 퍼진 화풍...그림 보고 배운 화가들
작품 공개와 모사, 화가의 이동을 거쳐 일상화와 촛불 장면으로 달라진 카라바조파

1990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예수회 수도원 식당에서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가 다시 발견됐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네덜란드 화가 헤리트 판 혼트호르스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혼트호르스트는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을 받아들인 화가였다. 카라바조는 공방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명암법은 네덜란드 화가에게까지 전해져 있었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미술 이론을 책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다른 화가들이 그의 작품을 보고 화풍을 받아들였다. 카라바조파는 이처럼 강한 명암과 사실적인 인물 묘사를 받아들인 화가들을 일컫는다. 카라바조파의 화풍은 1610년 카라바조가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유럽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화가들은 교회에서도 카라바조의 화풍을 접할 수 있었다. 1600년 로마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성 마태오의 소명"과 "성 마태오의 순교"가 공개되자 카라바조는 명성을 얻었고 젊은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받아들였다. 카라바조 자신도 이미 일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면서 종교화에서는 보통 사람을 성인의 모델로 삼았다. 후대 화가들은 이런 인물 묘사와 극적인 조명을 각자의 그림에 적용했다.
로마에서 활동한 화가 바르톨로메오 만프레디의 "큐피드를 벌하는 마르스"에는 전쟁의 신 마르스가 사랑의 신 큐피드를 때리자 사랑의 여신 베누스가 말리는 순간이 담겼다. 큐피드는 베누스의 아들인 사랑의 신이다. 어둠에 둘러싸인 세 인물을 왼쪽에서 들어온 빛이 강하게 비춘다. 만프레디는 어두운 배경과 가까이 배치한 인물, 격렬한 동작을 카라바조에게서 이어받았다. 만프레디는 이런 명암 대비로 신화 속 인물들의 충돌을 표현했다.

만프레디는 일상 장면도 그렸다. 1619~1620년 무렵의 "술과 음악의 모임"에는 젊은 남자 일곱이 식탁 주변에서 술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밝고 어두운 부분의 강한 대비 속에 식탁 위 칼과 인물의 드러난 칼자루가 흥겨운 모임의 긴장도 드러낸다.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그린 그의 일상화는 로마에 머물던 프랑스와 네덜란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카라바조 화풍의 확산을 도왔다.
카라바조 자신의 이동도 새로운 지역에 작품을 남겼다. 그는 1606년 라누초 토마소니를 살해한 뒤 로마를 떠나 나폴리로 피신했다. 현지에서 그린 "일곱 가지 자선행위"는 나폴리 화가들에게 오래 영향을 끼쳤다. 이곳에서 강조된 강한 조명과 격렬한 몸짓은 종교적 장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
작품을 직접 모사하고 거래를 돕는 화가도 있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을 모사했고 만투바 공작에게 "성모의 죽음" 구입을 권했다. 루벤스는 훗날 그린 "그리스도의 매장"에서도 원작에서 본 비스듬히 놓인 시신과 고통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묘사했다. 모사는 다른 화가가 원작의 구도와 인물 묘사를 자기 작품에 활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블린의 그림에 이름이 붙었던 혼트호르스트도 이탈리아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접한 뒤 위트레흐트로 돌아갔다. 그의 1625년작 "유쾌한 동행"에는 펼친 책 앞에서 술을 즐기는 학생과 류트를 연주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앞쪽 남자의 펼친 손과 두 여자의 웃는 얼굴은 밝게 드러나고, 왼쪽 뒤편의 인물과 방의 배경은 상대적으로 어둡다. 성서의 사건에 쓰이던 극적인 명암으로 술과 음악을 즐기는 장면을 보여준다.

혼트호르스트는 촛불이 비추는 밤 장면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카라바조는 그림 안에 촛불을 그리지 않았지만 그의 화풍을 받아들인 화가들은 촛불을 넣어 빛 자체에 시선이 쏠리는 장면으로 발전시켰다. 이들은 원작의 소재를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조명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바꿨다.
카라바조파의 유행이 바뀐 시점은 지역마다 달랐다. 위트레흐트의 카라바조파는 주요 화가들이 사망하거나 초상화와 역사화로 방향을 돌리면서 1630년 무렵 짧은 전성기를 마쳤다. 유럽 전체의 카라바조파는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보다 이상화된 고전주의 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17세기 중엽 쇠퇴했다. 그래도 렘브란트와 벨라스케스는 카라바조의 명암과 사실적인 인물 묘사에서 영향을 받았다.
카라바조파가 활동하던 때 화가와 관객이 그 화풍을 접하는 경로는 로마의 성당에서 수집가가 사들이는 일상화와 귀국한 화가의 밤 그림으로 넓어졌다. 화가들이 원작을 변형해 자기 작품에 적용하면서 카라바조의 명암법을 접하는 화가와 관객도 늘어났다.
오늘날 아이폰 X의 인물 사진 모드에서 고를 수 있는 "무대 조명"은 스포트라이트로 피사체를 배경과 분리해 보여준다. 이 조명 효과는 어두운 배경에서 밝은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카라바조파의 그림과 시각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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