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나폴레옹의 황실 가구, 독수리와 꿀벌로 새 황제의 권위 표현

궁정 건축가의 도안과 장인의 손으로 제작된 새 황실의 가구...가구 장식에 적용된 고대 문양

박정우 작가

엠파이어 스타일4분

Illustration by Gemini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궁정은 로마 황제의 독수리와 월계관으로 새 통치자의 권위를 표현했다. 혁명기 공안위원회의 의자는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고대의 모형을 따라 고안했다. 공화정의 덕목을 찾던 장식은 1799년 시작된 통령정부를 거치며 화려해졌고, 1804년 제정 수립 뒤 엠파이어 스타일로 발전했다.

나폴레옹의 궁정 건축가 샤를 페르시에와 피에르 퐁텐은 이 양식의 기본 틀을 마련했다. 로마에서 수학하고 고대 건축을 연구한 두 사람은 고대 기념물의 도면과 그 형태를 응용한 설계안을 책으로 펴냈다. 두 사람은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 조제핀이 머물던 말메종의 개조에도 참여했다. 1812년 두 사람이 펴낸 "실내장식 모음집"은 엠파이어 스타일의 중요한 참고서가 됐다. 엠파이어 스타일은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고전 건축 형식을 실내장식과 가구에 적용해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는 양식이다. 다른 설계자들도 이 모음집의 도안을 통해 궁정에서 사용한 장식 구성을 접할 수 있었다.

궁정의 도안을 실제 가구로 만드는 작업은 황실의 주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나폴레옹은 황실 가구의 주문과 관리를 맡는 부서를 두었고, 가구 업체 자코브데말테르는 주요 납품업체로서 궁전에 많은 가구를 공급했다. 이 업체는 1804년 튈르리 궁전에 납품한 나폴레옹 1세의 옥좌도 페르시에와 퐁텐의 설계에 따라 제작했다. 옥좌 제작에는 금도금 목재와 자수 벨벳, 상아를 사용했고 원형 등받이 가장자리는 월계 장식으로 둘렀다.

튈르리 궁전의 나폴레옹 1세 옥좌. 페르시에·퐁텐 설계, 자코브데말테르 제작·1804년 납품.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CC0

엠파이어 가구에는 쿠바와 앤틸리스에서 들여온 마호가니와 정교한 금도금 청동이 사용됐다. 마호가니는 얇게 켜서 다른 목재 바탕에 입히는 베니어로도 사용됐다. 엠파이어 가구는 넓고 반듯한 목재 표면에 금속 장식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돼 외형이 묵직했다. 독수리와 꿀벌, 별과 나폴레옹의 첫 글자 N은 황실 가구와 실내장식에 사용된 상징이었다.

문양마다 가리키는 과거는 달랐다. 독수리는 로마 제국과 군사적 승리를 떠올리게 했고, 나폴레옹은 이를 자신의 제국 문장에 넣었다. 꿀벌은 프랑스 초기 왕조인 메로빙거 왕조의 킬데리크 1세 무덤에서 발견된 금제 장식과 연결됐다. 새 왕조를 프랑스 왕권의 기원에 잇는 상징이었다. 궁정의 가구에 이런 문양을 적용하면서 나폴레옹의 통치는 로마 황제의 권위, 프랑스 왕조의 오래된 역사와 시각적으로 연결됐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장식에 활용할 소재가 더해졌다. 이집트 취향은 이미 18세기 유럽에 있었지만 원정에 동행한 드농이 1802년 펴낸 기록은 현지 건축과 문양을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르시에가 설계한 동전 보관함의 윗부분은 드농이 기록한 이집트 신전의 탑문을 본떠 만들었다. 이 보관함은 자코브데말테르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금속 장식은 은세공사인 마르탱기욤 비에네가 은으로 만들었다.

이 보관함에서는 고대 문양이 가구를 사용하는 장치로도 활용됐다. 은제 코브라의 눈에 도구를 넣으면 뱀의 몸체가 앞으로 젖혀져 열쇠 구멍이 드러나고, 양쪽 문 안에는 동전과 메달을 담는 서랍이 들어 있다. 서랍 앞 곤충 장식의 날개는 손잡이 역할을 한다. 이 보관함은 신전의 형태와 문양을 목재와 은으로 표현하면서 수집품을 보관하고 꺼내는 가구의 기능도 갖췄다.

이집트 신전의 탑문을 본뜬 동전 보관함. 샤를 페르시에 설계, 자코브데말테르 추정 제작, 마르탱기욤 비에네 은 장식.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CC0

유럽 궁정으로 확산된 엠파이어 스타일은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는 데도 사용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참모본부는 1819~1829년 건립됐고, 참모본부의 개선 아치는 1812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로마의 고전적 형태를 활용한 이 양식은 프랑스 황제를 기리는 공간을 넘어 다른 제국의 승리를 표현하는 건축에도 적용됐다.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에서 패하고 퇴위했지만 엠파이어 스타일은 이후에도 받아들여졌다.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이었다가 스웨덴 국왕이 된 베르나도트는 이 양식을 스웨덴에 전했고, 현지에서는 그의 왕명인 카를 요한을 따서 이 양식을 불렀다. 1820년대 카를 14세 요한을 위해 지은 스톡홀름의 로센달궁은 궁정의 격식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여름 궁전으로 사용됐다.

오늘날에도 로센달궁은 당시의 실내 모습을 상당 부분 보존하고 있다. 스웨덴 왕실은 붉은 살롱의 마호가니 가구와 바닥 전체를 덮은 카펫, 강렬한 색의 커튼을 카를 요한 양식의 특징으로 소개한다. 새 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던 양식은 다른 왕실의 휴식 공간을 꾸미는 데 쓰였고, 이제 궁전을 찾는 관람객은 이 양식을 통해 19세기 궁정의 생활과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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