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손대지 말라는 미술관에서 관람객 손으로 접게 만든 브라질의 예술가들

신구체주의가 강조한 직접적인 감각 경험은 클라크의 조각에서 관람객이 형태를 바꾸는 참여로 구체화됐다.

박정우 작가

신구체주의4분

1960년 브라질의 미술가 리지아 클라크가 만든 "선형 동물"은 관람객이 손으로 접고 펼치도록 구상한 알루미늄 조각이다. 경첩으로 이어진 판을 움직이면 판 사이의 각도와 조각의 형태가 달라진다. 정해진 앞뒤도, 되돌려 놓아야 할 이상적인 모양도 없다.

클라크는 앞서 1959년 "누에고치"에서 금속판의 평면을 관람객 쪽으로 돌출시켰다. 이듬해 시작한 "동물" 연작에서는 관람객이 판을 직접 움직이도록 했다. 작가가 접어 놓은 형태를 바라보는 데서, 관람객이 다음 형태를 선택하는 데로 작품과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다.

리지아 클라크, "선형 동물"(O Bicho Linear), 1960년.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 CC BY-SA 4.0

이 실험의 배경에는 브라질 기하학적 추상 내부의 논쟁이 있었다. 1952년 상파울루에서 선언을 발표한 미술 단체 그루푸 룹투라는 개인적·상징적 표현에 반대하고 명확하고 객관적인 원칙을 중시했다. 이들의 선언은 예술적 직관도 그러한 원칙에 따라 발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리우데자네이루의 미술 단체 그루푸 프렌치 출신 예술가들은 합리주의 이론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이 전개한 신구체주의는 기계적인 합리주의 이론에 반대하고 작품을 감각으로 경험하는 일과 관람객의 참여를 강조한 예술 운동이다. 1959년 3월 22일 발표된 "신구체주의 선언"은 시인이자 비평가인 페헤이라 굴라르가 썼으며 클라크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서명했다.

굴라르는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의 작품에서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적 성취를 발견했다. 그는 선언문에서 작품을 구성 요소의 관계로만 분석해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작품을 직접 지각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굴라르는 이처럼 부분의 합을 넘어서는 작품을 "살아 있는 유기체"에 비유했다.

클라크의 "동물"에서 관람객은 손으로 판을 움직이며 작품을 직접 경험한다. 판의 모양과 연결 구조를 아는 것만으로는 어느 판을 움직일 때 조각이 어떻게 펼쳐지고 균형이 달라지는지 경험할 수 없다. 관람객은 판을 움직인 결과를 살펴보며 다시 판을 움직인다. 기하학적 형태는 남아 있지만 관람객은 그 형태를 직접 바꾸는 역할을 맡는다.

판화가 리지아 파피가 1959~1960년에 제작한 "창조의 책"은 손의 조작을 해석으로 이어 갔다. 낱장으로 이루어진 보드와 종이 페이지는 펼치면 입체적인 추상 형태가 된다. 세계의 창조를 다룬 이 책에서 관람객은 페이지를 여러 방식으로 다루며 자신의 경험에 따라 이야기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손으로 바뀌는 것은 형태이고, 그 형태에 부여하는 의미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었다.

1959년 신구체주의에 참여한 미술가 엘리우 오이티시카는 색채를 공간으로 옮겼다. 그는 "공간 부조"에서 빨강과 노랑으로 칠한 목재판을 겹쳐 공중에 매달았다. 관람객이 작품 주위를 이동하면 겹친 판의 옆면과 앞면, 들어간 부분과 튀어나온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관람객은 손으로 판을 접는 대신 몸을 옮겨 가며 색과 형태의 관계를 경험한다.

신구체주의의 집단 활동은 1959~1961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선언문은 참여자들이 특정한 교조 대신 각자의 경험과 탐구의 친연성으로 모였다고 밝혔다. 집단 활동이 끝난 뒤에도 관람객과 작품의 관계를 바꾸는 실험은 이어졌다.

1963년 오이티시카가 시작한 "볼리드"도 집단 활동 이후에 이어진 실험이다. 안료와 흙 등 여러 재료를 담은 상자형 작품에서 관람객은 서랍이나 문을 열고 재료를 다루며 색과 냄새, 촉감을 직접 탐색할 수 있었다. 공중에 매단 색면 주위를 걷던 관람객은 이번에는 손을 비롯한 여러 감각으로 작은 상자 내부를 살피게 됐다.

엘리우 오이티시카, "볼리드"(Bólides). 사진 elefteria1, CC BY-SA 2.0

오늘의 디지털 전시에서도 관람객의 역할을 비교해 볼 만한 사례가 있다. 교토의 팀랩 바이오보텍스에서 선보이는 "스케치 오션"에서는 관람객이 종이에 색칠한 물고기가 다른 사람들이 색칠한 물고기들과 함께 화면 속 바다를 헤엄친다. 관람객이 물고기를 건드리면 물고기는 달아난다. 관람객은 화면의 반응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화면을 채우는 물고기의 모습에도 자기 선택을 더한다.

금속판을 접는 일과 디지털 물고기를 색칠하는 일은 재료와 작동 방식이 다르다. 두 작업에서 관람객의 역할을 비교하면 작가가 만든 구조 안에서 관람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클라크가 관람객에게 조각을 접도록 한 뜻도 여기에 있다. 관람객은 조각의 완성된 형태를 확인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관람객은 가능한 형태를 직접 만들어 보고 다시 바꾸며 작품을 경험하는 주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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