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소변 자국으로 꽃을 빚은 헬렌 채드윅

마크 퀸이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든 자화상

박정우 작가

아브젝트 아트3분

흰 꽃처럼 생긴 조각의 굴곡은 소변 자국을 본떴습니다. 영국 작가 헬렌 채드윅의 "피스 플라워스" 이야기인데요. 1991년 채드윅과 파트너 데이비드 노타리우스는 캐나다에서 눈이 쌓인 곳에 꽃 모양 금속 틀을 놓고 번갈아 그 안에 소변을 봤습니다. 두 사람은 눈이 녹으며 파인 공간에 석고를 부었고 채드윅은 그렇게 얻은 형태를 바탕으로 청동 조각을 만들었어요. 채드윅은 조각이 석고처럼 보이도록 표면에 흰색 에나멜을 칠했습니다. 따뜻한 소변에 눈이 녹아 움푹 파인 자리는 조각에서 위로 솟은 꽃의 형태가 됐지요. 꽃 모양 틀 안에서 소변에 눈이 녹은 흔적까지 조각에 남았습니다.

눈에 남긴 소변 자국을 본떠 만든 헬렌 채드윅의 "피스 플라워스"(1991~1992년). 사진 lightsgoingon,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만드는 과정을 알고 나면 이 꽃을 보며 아름다움과 함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을 소장한 주피터 아트랜드도 혐오와 아름다움의 결합을 채드윅 작업의 특징으로 설명합니다. 몸과 신체 기능을 소재로 청결과 품위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는 아브젝트 아트에서는 혐오와 아름다움에 끌리는 감정을 함께 살펴보게 되는데요. 작가들이 몸 밖으로 내보낸 것을 작품으로 다시 보게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몸에서 무언가를 밀어내는 경험과 이어집니다. 프랑스 사상가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1980년 "공포의 권력"에서 아브젝션, 곧 비체의 경험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론에서 배설물과 체액은 살아 있는 사람이 자신의 몸 밖으로 내보내는 물질입니다. 사체의 경우에는 한때 살아 있던 몸 전체가 밀어내야 할 대상이 되지요. 이런 대상을 마주하면 나와 외부, 삶과 죽음을 구분하던 경계가 불안정해집니다.

이 관점에서 채드윅의 꽃을 보면 배설물을 직접 접할 때와는 다른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요. 조각에는 청동과 에나멜이 남아 있지만 조각의 형태는 소변을 보는 신체 활동에서 비롯됐습니다. 몸 밖으로 내보낸 소변에 따라 아름다운 꽃의 모양이 정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꽃을 감상하면서 배설 행위까지 떠올리게 됩니다. 좋아할 대상과 밀어낼 대상을 따로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1993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이 연 전시도 "아브젝트 아트: 미국 미술의 혐오와 욕망"이라는 제목으로 혐오와 끌림을 함께 다뤘습니다.

마크 퀸은 "셀프"에서 몸 밖으로 꺼낸 물질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소장한 2006년 작품인데요. 퀸은 자신의 머리와 목을 본뜬 틀에 자기 몸에서 채취한 피를 채워 얼렸습니다. 눈을 감은 얼굴의 피부 주름과 턱수염까지 드러나는 이 자화상은 녹지 않도록 냉각장치 안에 놓여 있어요.

자신의 피를 얼려 얼굴을 만든 마크 퀸의 "셀프"(2006년).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사진 14GTR, CC0 1.0, 위키미디어 공용

채드윅의 꽃에는 배설물이 남긴 모양이 보존됐지만 퀸의 자화상에는 몸에서 나온 물질 자체가 남았습니다.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이 작품에 작가의 모습과 실제 몸의 일부가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합니다. 비체의 관점에서 이 자화상을 보면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는 문제가 더 선명해지지요. 퀸은 몸 안에 있던 피를 밖으로 꺼내 별개의 사물로 만들었는데 그 사물은 다시 피의 주인인 작가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몸 밖으로 분리된 물질을 그 사람의 일부로 다시 보게 되면서 몸의 안과 밖만으로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현대 영화에서는 자기 몸을 밀어내려는 인물도 볼 수 있습니다. 2024년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나이 든 스타는 약물로 젊은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젊은 몸은 등의 갈라진 틈에서 나오고 주인공이 두 몸을 번갈아 쓰는 규칙을 어기자 늙은 몸이 손상됩니다.

이 영화도 비체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몸을 얻으려 할수록 자신의 다른 몸은 더 견디기 어려운 대상이 되는데요. 한 사람의 두 몸을 화면에서 마주하면 어떤 몸을 나로 받아들이고 어떤 몸을 버리려 하는지도 공포의 일부로 느껴집니다. 채드윅의 꽃에서 아름다움과 불편함을 함께 보게 됐다면 이 영화에서는 아름다운 몸을 바라는 마음과 자신의 몸을 밀어내려는 마음을 함께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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