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소변과 피는 왜 예술의 재료가 되었을까
불결함과 혐오를 일으키는 신체 물질을 작품으로 다루며 자신을 온전한 존재로 여기는 감각을 건드린다.

1989년 미국 상원 본회의장에서 알폰스 다마토 의원이 작품 도록에 실린 복제 이미지를 찢으며 항의했습니다. 다마토 의원이 찢은 이미지는 사진작가 앤드레스 세라노의 1987년 작 "오줌 그리스도"였죠. 세라노는 자신의 소변에 십자가를 담가 촬영했습니다.
이 사진과 다른 작업으로 작가가 받은 상금에 국립예술기금(NEA)의 지원금이 일부 쓰이면서 연방정부의 예술 지원과 신성모독,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예술가들은 왜 체액과 배설물처럼 불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작품으로 다뤘을까요.
예술가들이 이런 대상을 작품으로 다루는 이유는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1980년 저작 "공포의 권력"에서 설명한 비천(abjection)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테바는 단순히 불결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비천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정체성과 질서를 교란하는 대상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몸 밖으로 나온 배설물은 한때 내 몸에 속했으면서도 밀어내야 할 대상이 되지요. 사체를 대할 때는 살아 있는 나와 죽은 물질 사이의 구분까지 위태로워집니다. 크리스테바는 혐오를 나와 남, 몸의 안과 밖을 나누던 경계가 흔들릴 때 생기는 불안과 연결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왜 그 불안을 작품으로 다룰까요. 크리스테바는 예술가나 저자가 비천에 몰입해 이를 작품으로 다루며 자신을 보호하는 과정을 시적 카타르시스와 연결했습니다.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불순한 것을 소리와 의미, 리듬으로 다시 표현하고 다르게 배열하는 시적 정화를 논합니다. 예술가가 혐오를 일으키는 대상을 작품의 형식 안에서 다시 다룬다는 설명입니다.
아브젝트 아트가 다루는 몸과 신체 기능은 이런 관점에서 청결함과 품위의 감각, 자신을 온전한 존재로 여기는 인식을 건드립니다.
미술에서는 이런 질문이 나오기 전부터 재료와 제작 방식을 문제 삼은 작업이 있었습니다.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남성용 소변기를 옆으로 눕혀 "샘"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미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했습니다. 뒤샹의 작품은 개막 직전 출품이 거절됐습니다.
뒤샹은 기성품을 골라 작품으로 제시하는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을 손으로 만드는 솜씨와 연결하던 관념에 의문을 던졌지요. 그는 배설물을 받는 도구도 작가의 선택과 아이디어를 통해 작품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1960년대 빈 행동주의 예술가 헤르만 니치는 실제 동물의 사체와 피, 내장을 의식 형태의 행위에 사용했습니다. 니치는 1962년에 피를 붓고 죽은 양을 십자가에 매다는 작업을 했지요.
니치 미술관은 그가 언어로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 강렬한 감각을 위해 피와 고기 같은 물질을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냄새를 맡고 만지는 경험까지 작품에 포함하려 했던 겁니다. 미술관의 해설에서 이 제의는 억눌린 충동을 드러내고 형식 안에서 다루는 카타르시스의 구상과 이어집니다.
1993년 뉴욕 휘트니 미술관은 "아브젝트 아트: 미국 미술의 혐오와 욕망"이라는 소장품 전시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를 계기로 아브젝트 아트라는 용어가 미술계에 더 널리 알려졌어요.
아브젝트 아트에는 체액을 직접 사용하는 작업과 함께, 신체 형상으로 익숙한 구분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도 포함됩니다.
이듬해인 1994년 키키 스미스가 만든 "막달라 마리아"는 청동과 강철로 된 조각입니다. 스미스는 청동으로 털에 덮인 성녀의 몸을 표현했습니다.
이 조각 속 성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놓인 몸으로 보입니다. 니치가 실제 신체 물질로 감각에 호소했다면, 스미스는 조각에서 몸을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 익숙한 인간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영화 화면도 비천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 연구자 바버라 크리드는 "에이리언"(1979년)을 분석하며 몸의 침범과 출생 장면에 주목했습니다. 괴물은 남성 승무원 케인의 몸 안에서 자라 몸을 뚫고 나오고, 그 출생은 케인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크리드의 해석에서 이 장면은 남성과 여성, 탄생과 죽음의 구분을 뒤흔듭니다. 체액과 찢긴 살이 화면에 등장할 때 생기는 공포에는, 자기 몸을 독립되고 온전한 것으로 여기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도 담겨 있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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