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첫 상용 트랜지스터 라디오 TR-1, 작게 만들어 팔기까지
TR-1은 부품을 줄여 목표 가격을 맞추고, 배터리 소모를 줄여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72년 전 오늘, 1954년 10월 18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I.D.E.A.가 트랜지스터로 신호를 증폭하는 첫 상용 라디오 리젠시 TR-1을 발표했다. 두 회사는 11월 1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이듬해 4월 미국 소비자 잡지 컨슈머 리포트는 음악을 재생할 때의 음질을 혹평하며 제품이 더 개선될 때까지 구매를 기다리라고 권했다. 이런 혹평에도 TR-1의 출시 첫해 판매량은 약 10만 대였다. 이 제품을 판매하기까지 두 회사는 작은 몸체에 전원과 스피커를 넣으면서 목표 판매가를 맞춰야 했다.
라디오를 들고 다니려는 시도는 이미 있었다. TR-1 개발팀도 외투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에머슨의 진공관 라디오를 사서 작은 스피커와 부품을 꺼내 썼다. 진공관은 신호를 증폭하려면 내부의 필라멘트를 가열해야 했고, 이 에머슨 제품은 가열용과 증폭 회로용 배터리를 따로 사용했다.
1947년 벨 연구소가 개발한 트랜지스터는 진공관 대신 신호를 증폭할 수 있는 반도체 부품이었다. 1953년에는 트랜지스터만 사용하는 보청기가 나왔다. 라디오에도 트랜지스터를 쓰면 필라멘트를 가열할 전력이 필요 없어 배터리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 전원을 함께 들고 다녀야 하는 휴대용 제품에서도 필라멘트 가열에 필요한 전력 부담을 덜 수 있게 된 것이다.
석유 탐사용 장비와 해군용 음향 기기를 생산하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트랜지스터 생산 면허를 확보했다. 이 회사의 부사장 패트릭 해거티는 트랜지스터 생산 비용을 낮추려면 소비재 시장을 개척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트랜지스터의 대량 수요를 확보할 제품으로 라디오를 택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RCA, 필코, 에머슨 등 유력 라디오 제조사들에 공동 개발을 제안했으나 협력사를 찾지 못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텔레비전 신호 증폭기 등을 만들던 I.D.E.A.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에드 튜더 대표가 이끌던 이 회사는 리젠시 상표로 라디오를 제조하고,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트랜지스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두 회사가 정한 목표 판매가는 약 50달러였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첫 시험 기기에는 트랜지스터가 8개 들어갔지만 개선한 모델에서는 6개로 줄었다. 이 회로를 그대로 제품으로 만들면 목표 판매가를 맞추기 어려웠다.
I.D.E.A.에서 설계를 이끈 엔지니어 리처드 코크는 트랜지스터 수를 4개로 줄였다. 방송 신호에서 소리를 추출하는 단계의 트랜지스터를 다이오드로 바꾸고, 각각의 트랜지스터가 맡던 발진과 혼합 기능을 하나의 트랜지스터로 처리하도록 했다. 필요한 부품 수를 줄여 비용을 낮췄지만 음량과 음질도 일부 포기해야 했다.
실제 TR-1에 들어간 트랜지스터의 조달 가격은 4개 한 묶음에 10달러였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이 가격에 공급할 부품을 대량으로 생산해야 했고, I.D.E.A.는 그 부품으로 판매 가능한 수신기를 완성해야 했다.
배터리를 오래 쓸 수 있도록 회로를 설계하는 일도 별도의 과제였다. 코크는 트랜지스터가 작동하도록 전류를 공급하는 회로를 바꿔 부품 수와 소비 전류를 줄였다. 전원으로는 22.5볼트 소형 배터리를 사용했다. 제조사는 기술 설명서에서 사용 빈도와 시간에 따라 배터리를 20~30시간 쓸 수 있다고 안내했다.
I.D.E.A.는 외형 디자인을 시카고의 전문 설계 회사에 맡겼다. 완성품의 높이는 약 13센티미터, 배터리를 넣은 무게는 약 340그램이었다. 작은 몸체에 전원과 스피커를 함께 넣어 사용자가 들고 다니며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했다.
TR-1에는 혼자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이어폰을 연결하면 스피커가 꺼졌다. 사용자는 수신기를 들고 이동하면서 스피커로 주변에 소리를 내보내지 않고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사용자는 필라멘트 가열용 전력이 필요 없는 회로와 작은 배터리 덕분에 휴대에 따른 전원 부담을 덜면서, 이어폰으로 스피커를 켜기 어려운 곳에서도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판매 가격은 49.95달러로 결정됐다. TR-1은 당시 진공관 라디오보다 비쌌다. 두 회사는 신기술을 먼저 사용하려는 소비자가 이 가격을 지불할 것으로 예상했다. 목표 판매가에 맞췄다고 해서 저렴한 라디오를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초기 수요는 공급을 빠르게 넘어섰다. TR-1은 음질에 한계가 있는 비싼 제품이었지만, 작은 트랜지스터 수신기를 사려는 시장이 있음을 판매로 보여주었다. 부품을 줄여 목표 가격을 맞추고 휴대에 필요한 전원과 청취 기능을 갖춘 설계가 실제 상품으로 이어졌다.
다른 회사들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하고 있었다. 훗날 소니가 된 도쿄통신공업은 리젠시 TR-1 발표 전에 라디오를 개발 대상으로 정해 1954년 6월에는 시제품 작업에 들어갔다. 도쿄통신공업은 리젠시 TR-1 소식을 접한 뒤에도 트랜지스터와 회로를 개선해 1955년 TR-55를 출시했다.
소형화 뒤에는 성능을 개선하는 경쟁이 이어졌다. 소니 기업사에 따르면 1957년 나온 TR-63은 TR-1보다 작으면서도 수신 감도와 음량을 높였고 배터리 소비도 줄였다. 도쿄통신공업은 이 제품을 해외에서 39.95달러에 팔았고, 연말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항공편으로 미국에 물량을 보냈다.
오늘날 소형 청취 기기는 주변 소음을 줄이는 기능까지 배터리로 작동한다. 소니가 2025년 발표한 무선 이어폰 WF-C710N은 블루투스로 소리를 받아 재생하면서 주변 소음을 줄이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제공한다. 제조사가 제시한 이어폰 자체의 연속 음악 재생 시간은 이 기능을 끄면 최대 12시간, 켜면 최대 8.5시간이다. 같은 기기에서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쓰면 다음 충전까지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진다.
TR-1에서는 제조사가 부품 수와 음질의 절충점을 정해 제품을 출시했다. 이 무선 이어폰에서는 사용자가 소음 차단과 재생 시간 사이에서 선택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청취 기기가 귀에 꽂을 만큼 작아진 지금도, 작은 전원으로 어떤 기능을 얼마나 오래 쓸지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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