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사진 찍고 공장에 보내던 코닥 카메라

종이 필름의 복잡한 처리는 공장이 담당...사진 촬영은 셔터를 누르는 일상의 취미로 확산

리지

1884년 10월 14일2분

142년 전 오늘, 1884년 10월 14일 미국의 발명가 조지 이스트먼이 빛에 반응하는 감광층을 종이에 입혀 사진을 기록하는 필름의 미국 특허를 취득했다. 4년 뒤 이스트먼은 100장을 찍을 필름이 들어 있는 코닥 카메라를 내놓았다. 사용자는 사진을 다 찍으면 카메라를 통째로 미국 로체스터의 공장에 보내야 했다.

촬영은 쉬워졌지만 사진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작업은 남아 있었다. 공장은 어떤 작업을 담당했을까.

이스트먼은 이 특허로 당시 사진에 쓰던 유리 건판, 곧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바른 유리판을 대체하려 했다. 이 유리판은 취급·운반 중 파손될 수 있는 데다 세척에도 수고가 들었다. 이스트먼은 종이와 그 위의 감광층 사이에 젤라틴을 얇게 바른 층을 두어 둘을 결합했다. 이스트먼은 이 방식으로 유리의 무게와 파손 부담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종이 필름을 사용해도 촬영 후 처리 작업까지 간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촬영한 감광층은 현상을 거치면 사진의 상이 담긴 이미지층이 됐고 특허에 적힌 처리법은 종이가 받치던 이 층을 분리해 인화에 쓰는 방식이었다. 현상한 이미지층을 유리판에 밀착시킨 뒤 열을 가해 중간의 젤라틴층을 부드럽게 만들고 종이를 벗겨야 했다. 유리판에 남은 이미지층을 인화에 사용했다. 촬영자는 유리판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지만 사진을 처리할 때는 유리판이 다시 필요했다.

종이 필름에는 종이가 현상 과정에서 휘는 문제도 있었다. 이스트먼과 윌리엄 워커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종이 뒷면에 젤라틴을 바르는 특허를 1884년 10월 14일 취득했다.

이스트먼은 1885년 종이 필름을 롤 형태로 넣는 장치와 함께 전문가에게 판매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이스트먼은 새 카메라와 필름을 아마추어에게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1888년 코닥 사용자는 끈을 당겨 셔터를 준비하고 대상을 향해 버튼을 누르면 됐다. 촬영이 끝난 뒤의 현상과 인화, 새 필름을 넣는 작업은 공장이 맡았다.

처음 카메라를 살 때는 필름을 포함해 25달러를 냈고 촬영 뒤 공장에 맡기는 서비스에는 10달러가 들었다. 고객은 비용을 지불하고 카메라와 인화된 사진을 돌려받았다.

이 방식으로 사진을 배우는 사람의 부담이 줄었다. 카메라 조작과 함께 화학 처리까지 익힐 필요가 줄어든 것이다. 사진사 연구에서는 코닥이 기기를 다루기 쉽게 만들고 현상까지 대신해 줘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사진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촬영을 쉽게 하는 데는 카메라 조작법뿐 아니라 촬영 후 작업을 누가 맡는지도 중요했다.

공장에서도 종이를 벗기는 작업에는 수고가 들었다. 이스트먼과 회사의 화학자 헨리 라이헨바흐는 유연하면서 투명한 필름을 개발했고 이 필름의 판매용 생산은 1889년 8월 말 시작됐다. 이 필름은 종이를 벗기는 특별한 처리 없이 현상할 수 있었다. 회사는 촬영자의 작업 부담을 줄이는 동안 사진 처리에 사용할 재료도 개선하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사진사 해설은 코닥 출시 몇 년 안에 스냅사진 취미가 크게 확산됐다고 설명한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1890~1892년의 익명 아마추어 앨범은 개인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례다.

다만 이 앨범의 일부 사진은 직접 만든 시아노타이프, 곧 철염을 이용한 푸른색 인화 사진이다. 이 앨범을 만든 아마추어가 코닥 공장에 모든 작업을 맡겼다고 볼 수는 없다.

오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상업 사진과 사진관 초상 중심이던 앨범이 개인의 경험을 담은 "시각적 일기"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이 미술관에 소장된 앨범에는 맥스와 프리츠라는 반려동물, 거리의 인물 사진, 뒤뜰에 세운 나무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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