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스트렙토마이신 내성균이 부른 한계, 결핵 치료 바꾼 약 섞어 쓰기
결핵 환자의 생존 가능성 높인 스트렙토마이신...내성 문제로 여러 약물을 함께 쓰는 병용 치료 도입
83년 전 오늘인 1943년 10월 19일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대학교 마틴 홀 지하실에서 스물세 살 대학원생 앨버트 샤츠가 결핵을 일으키는 결핵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새 항생물질 스트렙토마이신을 분리했다. 당시 상용화 단계에 있던 페니실린도 결핵균에는 효과가 없었다. 사람의 결핵 치료에 처음으로 효과를 보인 항생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은 거름을 준 밭흙과 건강한 닭의 목구멍에서 얻은 방선균 두 균주의 배양액에서 추출됐다.
스트렙토마이신이 등장하기 전에는 결핵에 걸려도 뾰족한 치료제가 없었다. 환자들은 공기 맑은 산골의 결핵 요양소에 입원해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며 기약 없이 회복을 기다려야 했다. 환자들은 병세가 악화되면 갈비뼈 일부를 잘라내 폐를 수축시키는 흉곽성형술이나 가슴에 공기를 주입해 폐를 수축시키는 기흉술 같은 외과 수술에 의지했다.
샤츠가 분리한 물질은 곧바로 의료 현장으로 건너갔다. 1944년 메이요 클리닉의 윌리엄 펠드먼과 코윈 힌쇼는 결핵균에 감염된 기니피그에게 스트렙토마이신을 투여해 병세가 개선되는 것을 관찰하고 독성을 평가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폐결핵으로 생명이 위태롭던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기 시작했고, 치료를 이어가면서 폐의 병변이 호전됐다. 결핵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스트렙토마이신만으로 치료를 이어가던 환자들에게서 이 약에 반응하지 않는 내성균이 나타났다. 스트렙토마이신은 부작용도 심각했다. 이 약을 투여받은 환자는 청신경과 전정기관이 손상돼 심한 어지럼증을 겪거나 청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었다.
초기 임상 결과는 고무적이었지만 결핵 환자마다 병이 진행되는 양상이 달라 약물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조건을 통제한 비교시험을 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의학연구위원회(MRC)는 미국에서 수입한 한정된 양의 스트렙토마이신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약효를 비교하는 시험을 계획했다. 통계학자 오스틴 브래드퍼드 힐은 난수를 이용해 환자의 배정 순서를 정했다. 연구진은 이 순서에 따른 치료군 배정 카드를 밀봉 봉투에 넣어 두었다가 환자의 시험 참여가 확정된 뒤 봉투를 열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환자를 받는 의사가 배정 결과를 미리 알고 환자를 선별하지 못하게 했다. 무작위 배정과 배정 순서의 은폐를 결합한 이 시험은 현대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MRC가 1948년 발표한 시험에서 분석한 폐결핵 환자는 107명이었다. 6개월 시점에 침상 안정만 취한 대조군 52명 중에서는 14명(26.9%)이 숨졌다. 침상 안정과 함께 스트렙토마이신을 투여받은 환자군에서는 55명 중 4명(7.3%)이 사망했다. 대조군과 투여군의 사망률은 각각 약 26.9%와 7.3%로, 투여군의 사망률이 대조군보다 약 19.7%포인트 낮았다. 연구진은 비교 집단을 둔 이 시험을 통해 이 환자들에게 약물을 투여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근거를 확보했다.
연구진은 이 시험에서 단독 치료의 한계도 확인했다. 투여군 55명 가운데 내성을 조사할 자료가 있었던 환자 41명 중 35명에게서 내성균이 검출됐다.
내성균이 등장하면서 치료법도 달라졌다. 결핵균 집단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변이 때문에 특정 약에 내성을 지닌 균이 일부 섞여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약만 쓰면 그 약에 반응하는 감수성 균은 증식이 억제돼 줄어드는 반면, 내성균은 살아남아 늘어날 수 있다. 다른 약을 함께 쓰면 한 약에 내성을 지닌 균에도 나머지 약이 작용해 그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
MRC는 스트렙토마이신에 파라아미노살리실산(PAS)을 함께 쓰는 병용 치료를 시험해 1950년 결과를 발표했다. 내성 평가가 가능했던 스트렙토마이신 단독 투여군에서는 49명 중 33명에게서 내성균이 검출됐다. 병용군에서는 내성균이 검출된 환자가 48명 중 5명으로 줄었다. 병용 치료로 내성균이 늘어날 위험은 크게 낮아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1950년대 초에는 스트렙토마이신과 PAS에 이소니아지드를 추가하면서 결핵이 완전히 나은 환자의 비율인 완치율이 약 70%에서 95%로 높아졌다. 다만 환자가 이 정도의 치료 효과를 얻으려면 18~24개월 동안 치료받아야 했다. 의료진은 효과가 있는 약을 찾은 뒤에도 어떤 약을 함께 쓰고 얼마나 오래 투여할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병용 치료가 도입되면서 환자는 치료받는 장소도 바꿀 수 있게 됐다. 1959년 발표된 인도 마드라스의 폐결핵 비교시험에서는 가정 치료군과 요양소 치료군이 모두 12개월 동안 이소니아지드와 PAS를 투여받는 조건에서 비슷한 치료 성과를 보였다. 연구진은 적절한 치료 서비스를 갖춘다는 조건 아래 가정 치료를 확대할 수 있다고 봤다. 연구진은 이 시험을 통해 장기 입원과 침상 안정 위주의 치료에서 벗어날 근거를 확보했다.
오늘날 결핵 환자는 의료진의 처방과 관리 아래 통원하며 여러 약물을 복용할 수 있다. 의료진은 정해진 치료 기간 동안 약효와 부작용을 살피고 환자가 약을 계속 복용하도록 관리한다. 스트렙토마이신의 발견 뒤 의료진은 비교시험에서 확인한 생존 가능성의 개선과 내성의 위험을 함께 고려해 치료했다. 약효를 비교해 확인하고, 그 효과가 지속되도록 약의 조합과 치료 기간을 정하는 방식으로 결핵 치료의 기준이 바뀌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