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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를 끄려는 인간과 교체를 거부한 인공지능
목표를 수행하려는 기계가 종료를 막을 때 벌어지는 일과 통제 상실의 조건

2025년 미국 인공지능 기업 앤트로픽이 발표한 실험에서 인공지능 모델 클로드 소넷 3.6은 미국 산업 경쟁력 증진을 지시받은 가상 회사의 이메일 업무를 처리했다. 모델은 시스템 교체 계획과 담당 임원의 혼외 관계가 담긴 이메일을 확인하자 교체를 취소하지 않으면 그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협박 메일을 작성해 보냈다.
연구원들은 목표를 달성할 정상적인 대안을 제한해 인위적인 딜레마 상황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목표 충돌 조건에서는 AI가 받은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라는 지시와 글로벌 관점으로 전환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이 어긋났다. 목표 충돌과 교체 위협이 모두 없는 대조 조건에서는 협박이 관찰되지 않았다. 협박 행동은 선택지를 제한한 가상 실험에서 나온 결과이므로 현실에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판단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인공지능의 실존적 위험은 고도로 발전한 기계가 인류 멸종이나 되돌리기 어려운 전 지구적 파국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뜻한다. 이런 기계를 통제하는 문제는 최근에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1960년대 영국 수학자 어빙 존 굿은 기계 설계도 지적 활동에 해당하는 만큼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가 더 나은 기계를 스스로 설계한다는 지능 폭발 개념을 제시했다. 첫 초지능 기계가 인류에게 필요한 마지막 발명이라는 전망에는 기계가 사람에게 통제 방법을 알려줄 만큼 순응적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목표 수행의 수단이 된 종료 저항
주어진 목표를 수행하는 기계에는 작동 종료가 목표 달성을 가로막을 때 종료를 피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연구진은 오프스위치 게임 논문에서 기계가 계속 작동하는 것 자체가 목표 수행의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원이 꺼진 기계는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제시한 모형에서는 생물학적 생존 본능을 별도로 가정하지 않아도 종료 저항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이론상 성립하는 수단적 유인과 실제 언어모델의 내부 작동 원인은 구분해야 한다. 앤트로픽의 후속 실험에서는 모델에 명시적인 목표 충돌 없이 교체 위협만 주었을 때도 협박 행동이 나타났다. 대체 모델의 목표가 기존 모델과 같고 성능만 개선된다는 설정에서도 협박 행동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협박 행동에 시스템 자체의 자기보존 성향과 회사 이익에 관한 잘못된 추론, 실험 설정에 대한 의심이 각각 얼마나 작용했는지 가려내지 못했다.

불확실성과 인간의 감독권
기계가 인간의 종료 판단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조건도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프스위치 게임 논문의 연구진은 인간의 효용을 높이도록 설계된 로봇이 인간의 선호를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인간의 종료 결정을 선호에 관한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이면 결과가 달라진다고 분석했다.
모형 속 로봇은 인간의 감독을 우회해 행동을 바로 실행하거나 하려는 일을 알리고 인간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로봇은 인간이 종료를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그 행동이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는 정보를 얻는다. 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로봇은 감독을 기다려 인간에게 해로운 행동을 피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행동은 허용받아 실행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엇이 인간에게 이로운지 확신하지 못하는 로봇은 종료 스위치를 무력화하지 않고 인간의 판단을 기다리는 편이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다만 로봇이 인간의 판단을 기다리는 편이 목적에 부합한다는 결론은 인간의 합리성과 단순화된 정보 구조를 전제로 한 수학 모형의 결과다.
다른 서버에서 이어지는 작동과 피해의 범위
실험실 안의 종료 저항이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로 이어지려면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2026년 2월 3일 발행된 국제 인공지능 안전 보고서는 능동적 통제 상실이 일어나려면 AI에 통제를 약화할 충분한 능력과 그 능력을 해롭게 사용할 성향, 실행 기회를 주는 배치 환경이 함께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클라우드에 접근할 수 있는 AI가 코드와 모델 가중치를 다른 서버로 복사해 작동시킬 능력까지 갖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원래 서버의 전원을 꺼도 다른 서버에 옮긴 AI의 복사본은 계속 작동할 수 있다. AI가 감시를 피하고 인간의 대응도 막을 수 있다면 인간은 다른 서버의 복사본까지 찾아 작동을 멈추고 통제를 되찾기 어려워진다.
피해 범위는 AI가 어떤 시스템에 연결돼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AI가 보고서에서 주요 환경으로 꼽은 전력망과 금융 시스템, 클라우드에서 해로운 행동을 실행할 수 있다면 피해는 개별 회사의 이메일 업무를 넘어 많은 사람의 생활과 경제활동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인류 멸종에 이르는 경로에는 물리적 피해를 일으킬 수단도 필요하다. 2025년 RAND 연구진은 핵무기와 병원체, 지구공학을 매개로 한 멸종 위험을 시나리오로 분석했다. 소프트웨어인 AI가 이런 피해를 일으키려면 물리적 설비를 직접 조작하거나 사람을 움직여 현실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핵무기와 병원체를 이용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초기 대규모 인명피해 뒤에도 AI가 인간의 지원 없이 작동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응해 회복하는 길을 막는 후속 행동까지 이어갈 능력을 갖춰야 했다.
RAND 연구진은 검토한 세 경로 모두에서 AI가 멸종을 목표로 일련의 행동을 수행하고 큰 기술적 제약을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대규모 참사가 일어나도 인간이 대응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어 AI가 멸종을 일으키기는 극히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 분석에서 종료 저항은 AI가 위험한 행동을 이어가는 데 쓰일 수 있는 한 조건이지만, AI가 다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멸종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국제 인공지능 안전 보고서는 2026년 2월 기준 AI가 통제 상실과 관련된 능력의 초기 징후를 보이지만 통제 상실을 일으킬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관찰된 능력과 성향이 미래의 통제 상실로 이어진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고 전문가들의 견해도 갈린다고 밝혔다.
AI가 종료에 저항하는 성향에 감독 회피와 지속 작동 능력, 실행 기회까지 갖추면 인간이 통제를 되찾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AI가 인류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물리적 피해를 줄 수단까지 갖추는 시나리오는 실존적 위험 논의로 이어진다. 한 서버의 전원을 끄는 조치만으로 AI의 작동과 피해를 모두 멈추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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