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없는 시인이 연 사조, 낭만주의는 위조에서 시작했다

고대 서사시라던 시집은 꾸며낸 위작...화가의 감정이 법이 된 자리에 할리우드 관현악 남아

리지

낭만주의2

어쩌면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가 그렸을 그림 by Gemini

나폴레옹은 파리 근교 별장 말메종에 걸 그림으로 저승 풍경을 주문했다. 그 저승에서 고대 켈트 음유시인 오시안이 구름 사이로 프랑스 전사자들의 넋을 맞이한다. 이 그림을 그린 지로데의 파격을 두고 스승 다비드는 "지로데가 미쳤거나 내가 더는 그림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모순은 다른 데 있었다. 오시안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1762년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등장했다. 시인 맥퍼슨이 고대 켈트 음유시인의 노래를 발굴했다며 시집 『핑갈』을 발표했다. 이 책은 곧 유럽 여러 언어로 번역돼 그리스 서사시에 필적하는 켈트의 유산으로 평가받았고 괴테도 여기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프랑스에 이 시를 퍼뜨린 대표적 인물이 나폴레옹이었으니 말메종의 그림은 그 열광이 남긴 산물이었다. 그러나 번역의 원본이라던 게일어 원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독자의 취향에 맞춰 맥퍼슨이 직접 꾸며낸 위작이었다.

오시안이 프랑스 전사자들의 혼을 맞이한다. 지로데, 1801년경, 말메종 성. 위키피디아

위작이야 물론 새로울 것이 없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위작이 무엇을 열어젖혔는가다. 같은 무렵 영국에서도 옛사람의 글을 발굴했다며 시를 발표하던 소년이 1770년 열일곱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소년 채터턴은 영어권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꼽힌다. 이성으로 세상을 다 알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믿음을 물리치고 감정과 상상을 앞세운 낭만주의는 독창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본보기도 선례도 없이 무에서 만들어 낸 것만이 천재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낭만주의는 남의 이름을 빌린 두 사람에게서 물려받았다.

화가의 감정이 법이 되자 화면이 달라졌다. 프리드리히는 "화가의 감정이 곧 법"이라고 적었고 거대한 풍경 한가운데 뒷모습의 인물을 세워 인간이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알렸다. 화면을 다루는 기법도 달라졌다. 신고전주의가 매끈한 마감 아래 지워 냈던 붓 자국을 이들은 물감을 두껍게 얹어 그대로 남겼다.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음악은 대부분 이 시대의 웅장한 관현악 어법으로 쓰였고 그 소리는 21세기 극장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감독을 작품의 주인으로 보는 시각도 그 음악 어법과 함께 이어졌다. 저승의 음유시인을 그린 그림은 지금도 말메종에 걸려 있다. 고증할 것이라곤 없는 화면이지만 200년째 사람들을 붙잡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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