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없는 시인이 연 사조, 낭만주의는 위조에서 시작했다
고대 서사시라던 시집은 꾸며낸 위작...화가의 감정이 법이 된 자리에 할리우드 관현악 남아

나폴레옹은 파리 근교 별장 말메종에 걸 그림으로 저승 풍경을 주문했다. 그 저승에서 고대 켈트 음유시인 오시안이 구름 사이로 프랑스 전사자들의 넋을 맞이한다. 이 그림을 그린 지로데의 파격을 두고 스승 다비드는 "지로데가 미쳤거나 내가 더는 그림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모순은 다른 데 있었다. 오시안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1762년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등장했다. 시인 맥퍼슨이 고대 켈트 음유시인의 노래를 발굴했다며 시집 『핑갈』을 발표했다. 이 책은 곧 유럽 여러 언어로 번역돼 그리스 서사시에 필적하는 켈트의 유산으로 평가받았고 괴테도 여기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프랑스에 이 시를 퍼뜨린 대표적 인물이 나폴레옹이었으니 말메종의 그림은 그 열광이 남긴 산물이었다. 그러나 번역의 원본이라던 게일어 원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독자의 취향에 맞춰 맥퍼슨이 직접 꾸며낸 위작이었다.

위작이야 물론 새로울 것이 없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 위작이 무엇을 열어젖혔는가다. 같은 무렵 영국에서도 옛사람의 글을 발굴했다며 시를 발표하던 소년이 1770년 열일곱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소년 채터턴은 영어권 최초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꼽힌다. 이성으로 세상을 다 알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믿음을 물리치고 감정과 상상을 앞세운 낭만주의는 독창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본보기도 선례도 없이 무에서 만들어 낸 것만이 천재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낭만주의는 남의 이름을 빌린 두 사람에게서 물려받았다.
화가의 감정이 법이 되자 화면이 달라졌다. 프리드리히는 "화가의 감정이 곧 법"이라고 적었고 거대한 풍경 한가운데 뒷모습의 인물을 세워 인간이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임을 알렸다. 화면을 다루는 기법도 달라졌다. 신고전주의가 매끈한 마감 아래 지워 냈던 붓 자국을 이들은 물감을 두껍게 얹어 그대로 남겼다.
할리우드 황금기 영화음악은 대부분 이 시대의 웅장한 관현악 어법으로 쓰였고 그 소리는 21세기 극장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감독을 작품의 주인으로 보는 시각도 그 음악 어법과 함께 이어졌다. 저승의 음유시인을 그린 그림은 지금도 말메종에 걸려 있다. 고증할 것이라곤 없는 화면이지만 200년째 사람들을 붙잡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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