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아브젝트 아트는 체액과 배설물로 몸의 경계를 묻는다
밀랍 인물상과 소변 자국으로 만든 꽃에서 신체의 취약함과 성별의 경계를 읽는다.
키키 스미스의 1990년 작품 "무제"는 체액을 흘리는 몸을 조각으로 보여준다. 스미스는 금속 지지대에 걸린 남녀의 몸도, 여성의 가슴에서 흐르는 모유와 남성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도 밀랍으로 표현했다. 왜 20세기 후반 예술가들은 고상한 아름다움 대신 인간이 감추고 지우려는 체액과 배설물, 내장에 매달렸을까.
아브젝트 아트는 신체와 신체 기능을 통해 청결함과 품위의 감각을 위반하는 주제를 다룬다. 뉴욕 휘트니 미술관은 1993년 6월 23일부터 8월 29일까지 "아브젝트 아트: 미국 미술의 혐오와 욕망"이라는 소장품 전시를 열었다. 이 예술을 이해할 실마리는 철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1980년 저작 "공포의 권력"에서 설명한 비체에 있다. 내 몸에서 나온 피와 배설물은 버려진 뒤에도 내 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못한다. 사체는 한때 살아 있던 몸이 통째로 버려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크리스테바는 이처럼 나와 남, 안과 밖, 생명과 죽음을 나누던 경계가 흔들릴 때 생기는 혐오를 설명했다.
몸 밖으로 흐르는 분비물까지 조각의 일부가 된 스미스의 "무제"를 비체의 관점에서 보면, 완결된 신체라는 관념이 흔들린다. 모유와 정액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몸의 기능을 드러낸다. 휘트니의 해설은 고개를 숙인 인물들의 자세에서 죽음을 연상하고, 붉은빛 밀랍을 겹친 표면에서 피부와 내장의 취약함을 짚는다. 분비물을 내보내는 몸의 기능과 그 몸이 쇠약해질 가능성을 함께 표현하면서, 이 조각은 생명을 만들어내는 몸도 손상과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해석을 열어준다.
이런 불편함을 예술로 다루는 의미를 크리스테바는 "시적 카타르시스"와 연결했다. 그의 설명에서 시적 정화는 불결함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불쾌한 것을 되풀이하고 다르게 배열하며 두려움을 다룰 가능성이 생긴다. 스미스의 작업도 이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밀랍으로 재현한 분비물은 몸에서 떼어내 버리려던 것을 조각의 일부로 남겨, 관람의 대상으로 바꾼다.
배설과 예술을 가르는 관습에 대한 도전은 앞서 다다이즘에서도 나타났다.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출품했으나 전시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설의 도구를 작품으로 제출한 사건은 어떤 사물을 미술로 받아들일지의 문제를 남겼다.

영국 작가 헬렌 채드윅의 "피스 플라워스"에서 흰 꽃을 이루는 청동은 눈에 남은 소변 자국을 본뜬 것이다. 그 형태는 1991년 캐나다에서 채드윅과 파트너 데이비드 노타리우스가 꽃 모양 틀 안의 눈에 번갈아 소변을 보는 과정에서 생겼다. 두 사람은 눈에 파인 공간을 석고로 본떴으며, 이 석고 형태를 바탕으로 청동 조각을 주조하고 표면을 흰색으로 마감했다. 배설 행위가 눈에 남긴 흔적이 꽃 조각의 굴곡과 부피를 결정한 것이다.

채드윅의 소변이 만든 중심부는 남근을 닮았다. 신체의 성별과 조각의 성적 형상이 단순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이다. 채드윅은 두 사람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결합한다는 의미를 이 작업에 담았다. 스미스의 체액 표현이 몸의 취약함을 보여준다면, 채드윅의 배설 행위는 아름다운 형태와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는 과정이 됐다. 혐오스러운 재료를 택한 작업 안에도 서로 다른 질문과 즐거움이 들어 있다.
이 경계의 관점으로 영화 "기생충"의 냄새 장면도 읽을 수 있다. 부유한 고용주 박동익은 운전기사 김기택이 선을 지킨다고 여기면서도 그의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비체 개념으로 계급을 분석한 영화 연구는 이 냄새가 사람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표지로 쓰인다고 설명한다. 김기택은 일을 하러 부유한 집 안에 들어왔지만,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다시 그 집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몸의 경계를 묻던 시선은 여기서 사람 사이의 경계를 만드는 혐오를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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