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일본은행 국채 매입 축소, 금리 위험과 자산 배분에 달린 민간 수요
은행의 금리 위험과 보험금 지급 시점...연금의 자산 배분에 따라 달라지는 일본 국채 매수 조건
일본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2026년 6월 말 2,519조엔이다. 이 가운데 현금·예금은 1,132조엔으로 44.9%를 차지한다. 가계가 직접 보유한 국채·재정융자채는 약 22조엔으로 전체 금융자산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막대한 예금 잔액을 보면 국채에 투자할 자금도 충분해 보인다.
가계 자금은 은행을 거쳐서도 국채 시장에 유입된다. 은행이 가계 예금으로 국채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계와 금융기관의 국채 보유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일본은행도 국채를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 단기증권을 제외한 국채·재정융자채 가운데 일본은행이 보유한 비중은 2023년 9월 53.86%에서 2026년 6월 46.70%로 낮아졌다.
일본은행은 2024년 7월 국채 매입 축소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월 약 5.7조엔이던 장기국채 매입액을 2026년 1~3월 월 약 2.9조엔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본은행은 올해 6월 발표한 계획에서 매입액을 10~12월 월 약 2.3조엔, 내년 4월 이후 월 약 2조엔으로 제시했다. 일본은행은 매입을 계속하면서 시장에서의 역할을 줄이고 있다.
정부가 만기 국채를 상환하려고 새 국채를 발행하면 차환용 국채를 매수할 투자자가 필요하다. 일본은행도 보유 국채의 원금을 상환받고 시장에서 국채를 다시 매입한다. 정부의 발행·상환 조건이 같다면 일본은행이 상환액에 비해 재매입액을 줄이는 만큼 다른 투자자가 보유할 국채 물량이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은행과 보험사, 연금과 가계가 어떤 조건으로 국채를 매수하는지가 중요해진다.
금리 상승으로 민간의 매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에는 설득력이 있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같은 이자와 원금을 받을 권리를 더 낮은 가격에 매수할 수 있어 매입수익률이 높아진다. 10월 8일 일본 재무성의 30년물 국채 입찰에서 평균 낙찰수익률은 연 4.109%였다. 다만 높아진 수익률을 보고 매수하는 투자자도 이후의 가격 변동을 감당해야 한다.
은행은 이자 수익과 평가손실 위험을 함께 고려한다. 고정금리 국채를 매수한 뒤 시장금리가 더 오르면 보유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만기가 길수록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도 대체로 커진다. 따라서 예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은행이 장기채 보유를 늘릴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일본은행의 4월 금융시스템보고서에 따르면 은행권의 예금 잔액은 대출 잔액을 크게 웃돈다. 은행들은 이 차액의 상당 부분을 이미 국채와 일본은행 예치금 등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예금 대비 대출 비율도 다소 상승했다. 따라서 예대 잔액 차이 전부를 신규 국채 매수에 투입할 수 있는 자금으로 볼 수는 없다.
실제 투자 방향도 은행마다 차이가 있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은행은 이자 수익을 확보하려고 중장기 국채 보유를 완만하게 늘렸다. 대형은행은 금리 상승 위험에 대비한 헤지도 병행했다. 지방은행과 신용금고는 엔화 채권의 듀레이션, 즉 금리 변화에 대한 가격 민감도를 낮췄다. 은행권 안에서도 수익률을 확보하려는 매수와 금리 위험을 줄이려는 운용이 함께 이뤄졌다.
생명보험사는 앞으로 지급할 보험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험료를 운용한다. 수십 년 뒤 지급할 보험금은 현재 시장금리에 기초한 할인율로 환산해 보험 부채의 현재가치를 평가한다. 지급액과 시점이 같다면 금리가 오를수록 그 부채의 현재가치는 낮아지고, 금리가 내리면 높아진다. 장기채 가치도 금리가 오르면 떨어지고 내리면 오르므로 보험 부채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두 가치가 서로 다른 폭으로 움직이면 보험사의 순자산에도 영향을 준다. 보험사는 장기채를 보유해 자산과 보험 부채의 금리 민감도를 비슷하게 맞춤으로써 순자산의 변동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자산·부채 관리를 반영하는 경제가치 기반 지급여력 규제는 2026년 3월 31일부터 적용됐다. 장기 보험 부채를 가진 보험사에는 초장기 국채를 매수할 유인이 있지만, 규제 대응을 위해 이미 매수한 물량과 앞으로의 추가 수요는 구분해야 한다. 일본은행은 4월 금융시스템보고서에서 보험사의 자산·부채 간 듀레이션 격차 축소 작업이 일단락됐으며 초장기 금리의 변동성도 보험사가 추가 매수에 신중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국채를 발행하는 정부도 만기별 수요에 맞춰 물량을 조정한다. 재무성은 국채를 매수하는 주요 기관투자가와 국채투자자회의를 열어 시장 의견을 듣는다. 6월 29일 회의에서는 보험사의 규제 대응이 진전되면서 초장기채 수요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의견과 함께, 발행 축소로 수급이 개선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보험사의 매수가 둔화돼도 발행 물량이 함께 줄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달라진다.
일본 공적연금의 운용기관인 GPIF는 국내채권과 해외채권,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에 각각 25%를 배분하는 기준을 두고 있다. GPIF는 2025년 3월 31일 인가돼 4월 1일부터 적용된 제5기 계획에서도 국내채권 목표 비중을 유지했다. 국내채권 비중은 목표에서 위아래로 6%포인트까지 벗어날 수 있어, 19~31% 범위에서 운용할 수 있다.
자산별 가격이 다르게 움직이면 매매 없이도 배분 비중이 달라진다. 예컨대 다른 자산의 가치가 그대로인 상태에서 주식 가치가 오르면 국내채권 비중이 낮아져, 목표에 맞추기 위해 국내채권을 늘리는 조정 수요가 생길 수 있다. 2026년 6월 말 GPIF와 연금특별회계를 합친 포트폴리오의 국내채권 비중은 25.59%였다. 목표인 25%를 웃돌면서 허용 범위 안에 있으므로, 이 비중은 배분 부족을 메우기 위한 국채 매수가 필요한 상태를 보여주지 않는다.
국내채권으로 분류되는 자산에는 엔화로 환위험을 헤지한 외국채와 엔화 단기자산도 포함된다. 국내채권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일본 국채 이외의 자산에 투자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내채권 비중을 조정한다고 해서 같은 규모의 일본 국채를 매수하는 것은 아니다.
가계가 직접 매수하는 국채는 상품에 따라 이자를 받는 조건도 다르다. 재무성이 판매하는 개인용 국채는 세 상품 모두 연 0.05%의 최저금리를 보장한다. 고정 3년·고정 5년 상품은 발행 때의 금리가 만기까지 유지된다. 변동 10년 상품은 시장금리에 따라 적용금리를 반년마다 조정하므로 시장금리가 오르면 가계가 받는 이자가 늘어날 수 있다.
가계의 직접 매수도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행 자금순환 통계에서 가계는 2026년 2분기 중앙정부·재정융자기금 발행 장기채를 약 1.93조엔 순취득했다. 낮은 보유 비중 속에서도 새 매수가 이뤄진 것이다.
일본은행은 4월 금융시스템보고서에서 가계 자금이 주식·해외증권 중심 투자신탁으로 유입되는 흐름도 기록했다. 가계는 펀드 투자와 국채 직접 매수를 병행했다. 다음 분기에도 가계의 국채 수요가 이어지는지는 자금순환 통계의 장기채 순취득액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금 총액과 기존 국채 보유 비중만으로는 이런 변화를 알기 어렵다.
민간 수요에는 국내 금융기관과 가계 외에 해외 투자자의 거래도 포함된다. 일본은행은 4월 보고서에서 외국 헤지펀드의 일본 채권시장 내 존재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투자자 몇 집단의 제약만으로 시장 전체의 흡수력을 판정하기 어려운 배경이다. 6월 국채투자자회의에서도 장기채 수급이 발행계획을 바꿔야 할 정도로 구조적으로 약하지는 않다는 의견이 함께 나왔다.
일본은행은 장기금리가 급격히 오르면 매입을 늘릴 수 있다는 방침도 유지했다. 민간의 매수 조건뿐 아니라 정부가 어느 만기의 국채를 얼마나 발행하는지, 일본은행이 어떤 속도로 매입을 줄이는지에 따라서도 수급은 달라진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줄어드는 과정에서도 시장에서는 이 여러 조건에 따라 조정이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가계 현금·예금 1,132조엔을 전부 국채 매수 대기자금으로 볼 수는 없다. 은행은 가계 예금으로 국채를 매수하면 금리 위험을 부담한다. 가계가 변동 10년 개인용 국채를 매수하면 반년마다 조정되는 금리에 따라 받을 이자가 달라진다. 일본은행의 매입이 줄어드는 시장에서는 자금 총액과 함께 누가 어떤 만기와 이자 조건으로 투자하는지에 따라 국채 수요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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