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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플랫폼 갑질 규제서 입점업체 개별 피해 특정 부담 덜어야 제언

한국개발연구원은 플랫폼이 불특정 다수에게 일괄 규칙을 적용하는 만큼 피해자 특정 부담을 덜고 효율성 증진을 함께 따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정우 작가

플랫폼 거래상지위4분

202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에 내린 시정명령을 취소했다. 공정위는 쿠팡이 납품업체에 판촉비 부담을 전가한 행위 등을 문제 삼아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제재했다. 법원은 쿠팡이 당시 거래 상대방인 독과점 제조업체들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갖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사건에서 개별 납품업체의 피해를 특정해야 하는 공정위의 부담에도 주목했다. KDI에 따르면 법원은 대규모유통업법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공정거래법의 거래상지위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공정위가 납품업체별 피해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다만 보고서가 발간된 2025년 10월에는 대법원 판단이 남아 있었다.

KDI가 2025년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국회에 발의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률안은 41개였다. 배달앱의 수수료 책정과 이커머스의 판촉비 전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새로운 규제 논의가 이어졌다. KDI는 보고서에서 쿠팡 사건을 계기로 기존 사후 규제가 플랫폼의 사업 방식에 적합한지 검토했다.

대표적인 사후 규제로는 공정거래법의 거래상지위 남용행위 규제가 있다. 거래상지위란 거래 상대방보다 우월한 협상력을 갖는 상대적 지위를 뜻한다. KDI의 설명에 따르면 거래 상대방인 을이 누구인지 밝히고, 을이 갑에게 얼마나 의존하는지와 두 기업의 사업 능력 격차를 살펴 갑의 거래상지위 유무를 판단한다. 이어 갑이 부당한 거래 조건을 강요했는지, 을이 입은 피해의 내용과 방식, 정도는 어떠한지 구체적으로 확인한다.

문제는 개별 거래관계를 살피는 이 방식이 플랫폼의 일반 거래 규칙과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KDI는 플랫폼이 수천, 수만 입점업체마다 맞춤형 계약을 맺기보다 알고리즘과 수수료율 같은 규칙을 정해 일괄 적용한다는 점을 짚었다. 보고서는 이 규칙 제정 권한을 특정 업체에 대한 상대적 힘보다 장터 안의 이용사업자 일반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가깝다고 봤다.

플랫폼이 이런 권한을 남용하면 피해가 소수 업체에 한정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다. KDI는 이런 상황에서도 피해 업체와 피해 내용을 일일이 특정하도록 요구하면 조사 부담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KDI는 공통 규칙에서 비롯된 피해를 일부 업체의 사례만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실제 폐해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지도 문제로 제기했다.

물론 규제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플랫폼은 여러 이용자 집단을 연결하는 다면시장 중개자로서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에서도 납품업체가 부담을 지면 완성품 가격이 내려가 소비자가 간접적인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있다. 플랫폼은 소비자가 중개 거래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라는 점에서 전통 제조업과 다르다. 입점업체에 불리하게 거래 조건을 변경해도 다른 쪽 이용자인 소비자는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KDI는 배달앱이 자신이 부담하던 비용 일부를 음식점에 전가하고 절약한 돈 전부를 소비자에게 쿠폰으로 제공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이 경우 음식점은 부담이 늘지만 소비자는 할인 혜택을 받는다. KDI는 실제 대표 사례를 제시하지 않고 하나의 거래 조건 변경이 이용자 집단별로 다른 효과를 낼 수 있음을 가상의 사례로 설명했다.

이런 효과를 고려할 제도적 근거는 이미 있다. 2024년 12월 30일 시행된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에 따르면 거래상지위 남용행위의 합리성을 판단할 때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가 거래의 불공정성으로 인한 해로운 효과를 현저히 웃도는지 등을 살피되 이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공정위는 여기어때 사건 의결서에도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 효과를 판단 요소로 기재했다. 이는 KDI가 보고서에서 기존 규제에서는 효율성을 별도로 검토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내용과 차이가 있다. KDI는 보고서에서 플랫폼 거래로 다른 이용자에게 생기는 직접적인 효과를 사건 처리 과정에서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KDI는 단기적으로 피해자들의 공통 사정이 일정 수준 확인되면 피해자를 일일이 특정하고 피해를 개별적으로 입증하는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KDI는 공통 사정을 뒷받침할 근거와 논증이 있어야 하며 자의적인 법 적용을 막도록 적용 요건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개별 피해를 특정하는 부담을 줄이는 대신 공통 규칙이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 설명할 근거를 요구한 것이다.

거래 질서 전반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자는 제안도 이 방안과 연결된다. 한 업체가 입은 피해가 작더라도 이 피해를 겪은 업체가 광범위하게 분포하면 거래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클 수 있기 때문이다. KDI는 피해 업체 하나의 거래 내용에서 나아가 전체 영향을 살피고, 플랫폼이 다른 이용자의 편익을 높였다고 주장하면 그 효과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KDI는 장기적으로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거래상지위는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므로 누구에 대한 우월한 협상력인지를 따져야 한다. KDI는 플랫폼의 힘이 특정 상대방과의 관계보다 거래 공간 전반에서 조건을 정하는 능력에 가깝다고 보고 지위 판단의 초점을 그 능력으로 옮기자고 제안한 것이다. KDI는 특정 플랫폼만 이용하는 이용자가 일정 규모 확보돼 있으면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아도 경쟁 플랫폼의 압력이 충분히 작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입점업체가 그 이용자들과 거래하려면 해당 플랫폼을 이용해야 하므로 플랫폼에 거래 조건을 변경할 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KDI는 법상 추정 기준인 단독 시장점유율 50% 이상과 함께 실제 거래 조건 변경 능력을 반영하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을 제안했다.

KDI는 규제 방식을 바꾸려면 집행 준비도 필요하다고 봤다. 기존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규제에서는 경쟁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에 집행이 집중된 데 비해 거래 상대방의 이익을 흡수하는 착취 행위에는 집행이 자제돼 왔기 때문이다. KDI는 유럽에서 플랫폼의 착취 행위를 살피는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도 이에 관한 연구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KDI는 보고서에서 개별 피해 입증 문제의 해법으로 공통 규칙의 효과를 입증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피해 업체마다 공통된 사정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부담을 줄이되 그 규칙이 다수 업체와 거래 질서에 미친 영향을 근거로 제시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 등 다른 이용자가 얻는 편익을 함께 비교하면 판단 대상은 특정 업체 한 곳의 손해에서 하나의 거래 규칙이 여러 이용자 집단에 미친 효과까지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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