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석유와 가스를 덜 쓰면 배터리와 비료의 황 조달도 어려워질 수 있다
연료 생산의 부산물에 기댄 황 공급은 탈탄소 전환기에 비료와 배터리 소재의 원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세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산업용 화학물질은 황산이다. 황산은 인산비료를 만들고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니켈과 코발트를 광석에서 추출하는 데 필요하다.
영국 런던대 연구진의 2022년 논문에 따르면 당시 세계에 공급된 황의 80% 이상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황 성분을 제거하는 탈황 공정에서 나온 부산물이었다. 이 황을 태운 뒤 반응을 거쳐 황산을 만든다. 이처럼 황산 원료를 연료 생산에 의존하는 탓에 연료 사용을 줄이는 전환 과정에서 배터리와 농업에 필요한 원료 공급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황 시장에서는 가격 상승과 생산 증가가 함께 나타났다. 미국 탬파의 황 계약 가격은 2024년 초 롱톤당 69달러에서 2025년 10월 초 310달러로 올랐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2026년 자료는 세계 황 생산량을 2024년 8,390만 톤, 2025년 추정 8,400만 톤으로 제시한다. 정제시설 개선과 신규 사업에 따른 증산을 예상하며 가까운 장래 공급도 충분하다고 평가한다. 이 공급 기반이 장기적으로 연료 생산과 함께 줄어들 때 배터리와 비료의 원료를 어떻게 조달할지가 연구진이 제기한 문제다.
석유와 가스에서 회수하는 황이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전에는 황을 직접 채굴하는 광산이 주요 공급원이었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유황 광산이 세계 황 공급을 주도했다.
19세기 말 헤르만 프라슈는 지하의 황을 녹여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프라슈 공법을 개발했다. 이 공법은 약 165도의 물이 끓지 않도록 압력을 높여 광맥에 주입한 뒤 녹은 황을 압축 공기로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미국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일대에서 프라슈 공법을 이용한 황 생산이 확대됐다.
정유사들이 황을 제거한 데에는 우선 정제 공정상의 필요가 있었다. 원유 속 황 화합물이 정제에 쓰이는 촉매의 기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기오염과 산성비를 줄이려는 배출 규제와 연료의 황 함량 규제가 강화되면서 황 회수량이 늘었다.
정유사들은 클라우스 공정을 통해 탈황 과정에서 기체로 분리된 황화수소를 원소 황으로 전환했다. 연료를 만들기 위해 제거해야 하는 물질을 화학 산업의 원료로 판매하는 공급망이 확대됐다.
저렴한 회수 황의 공급이 늘자 물을 가열하는 데 많은 연료가 필요한 황 광산들은 경쟁력이 떨어졌다. 미국의 마지막 프라슈 광산인 메인패스 광산은 2000년 8월 낮은 황 가격과 높은 연료비, 기술 문제로 운영을 중단했다. 황산은 비철금속 제련 과정에서도 생산되지만, 황산 원료인 황을 조달하는 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부산물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이 공급망에서는 황 가격이 오른다고 생산을 늘리기 어렵다. 정유사의 주된 사업은 연료 생산이므로 황 가격이 올랐다고 황을 얻기 위해 원유 처리량을 늘리기는 어렵다.
황 회수량은 처리하는 원유의 황 함량과 회수 기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탈탄소 전환으로 석유와 가스 처리량이 줄면 황 회수량도 줄어들 수 있지만, 감소 폭은 원유의 황 함량과 회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황산을 사용하는 산업에서는 수요가 연료 수요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생산되는 황산의 절반 이상은 인산염 암석을 처리해 인산비료를 만드는 데 쓰인다.
배터리 소재 생산에도 황산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온과 고압에서 황산으로 저품위 광석의 니켈과 코발트를 녹여 추출하는 고압 산침출(HPAL) 사업이 가동되고 있다. 터키 광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광석 중량의 0.30배에 해당하는 황산을 사용했다. 광석 1톤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사용한 황산은 300킬로그램이다.
런던대 연구진은 2022년 논문에서 연간 2억 4,600만 톤 이상이던 황산 사용량이 2040년 4억 톤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진은 석유 이용 전망에 따라 회수 황 공급을 추산하고 천연가스 등 다른 공급원의 공급량은 일정하게 두었을 때 탈탄소 속도에 따라 2040년 연간 1억~3억 2,000만 톤의 황산이 부족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연료 생산 과정에서 회수하는 황이 줄어드는 동안 비료 생산과 광물 추출에 필요한 황산 수요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직접 채굴을 늘려 그 간격을 메우려면 부산물 공급에 가려졌던 비용을 다시 부담해야 한다. 프라슈 공법에는 주입수를 가열할 에너지와 황·황화수소에 오염된 폐수의 처리가 필요하다. 황철석 같은 황화광석을 이용하는 경로에서는 광산 폐기물이 주변 물을 산성화하고 중금속을 유출할 위험이 있다. 매장된 황이 풍부해도 기존의 값싼 회수 황을 같은 비용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연료 생산에서 회수하는 황이 줄고 대체 채굴의 비용이 커진다면 황산을 확보하려는 업체 사이의 가격 경쟁도 달라질 수 있다. 연구진은 전환기에 녹색 기술 산업이 비료 생산업체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배터리 소재를 더 생산하는 데 필요한 황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비료 업체의 원료 조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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