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대륙협약의 영국 불매가 넓힌 주민의 자치 참여

12개 식민지 공동 불매 규약...지역 위원회 조사와 거래 중단으로 집행

박정우 작가

1774년 10월 20일3분

252년 전 오늘, 1774년 10월 20일 채택된 대륙협약(Continental Association)은 장례식 상복까지 제한했다. 남성은 팔이나 모자에 검은 크레이프 천이나 리본을 두르고, 여성은 검은 리본과 목걸이만 착용하도록 허용했다. 장례식에서 장갑과 스카프를 나눠 주는 관행도 중단하도록 했다. 영국과의 교역을 제한하는 동안 소비를 줄이고 버티기 위한 검약 조치였다.

이날 필라델피아 카펜터스 홀에서 협약에 서명한 대표는 53명이었다. 대륙협약은 조지아를 제외한 12개 식민지를 대표한 제1차 대륙회의가 마련한 공동 합의였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 의회가 보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매사추세츠의 자치 정부 구성을 바꾸는 강압 법안을 통과시키자, 식민지 대표들은 교역을 제한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공동 규칙의 집행은 각 지역에서 맡도록 했다. 제11조는 식민지 의회 대표 선거의 투표 자격을 갖춘 주민들이 카운티와 시, 타운마다 위원회를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위원회 과반이 관할 지역 주민의 위반을 확인하면 그 사실을 신문에 공표하고, 협약 참여자들은 위반자와 모든 거래를 끊기로 했다. 협약이 이 위원회에 명시한 제재 수단은 공개와 거래 단절이었다.

위원회가 준수 여부를 살필 교역 규칙은 대상과 시점을 나누어 정했다. 1774년 12월 1일부터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오는 상품, 그곳에서 수출돼 다른 지역을 거쳐 들어오는 상품을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 동인도산 차는 어느 지역에서 오든 수입을 금지했고, 이날 이후 반입되는 노예의 수입과 구매를 금지하며 노예무역 관여도 중단하기로 했다.

수입 금지를 지키게 하려고 제3조는 구매·사용 제한을 덧붙였다. 차는 종류에 따라 구매·소비 중단 시점을 따로 정했고, 그 밖의 수입 금지 상품은 1774년 12월 1일 이후 반입됐다고 알거나 의심할 이유가 있으면 구매·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상품을 들여오는 사람뿐 아니라 사서 쓰는 주민에게도 수입 금지 준수를 뒷받침할 책임을 부여한 것이다.

금지 초기의 반입 상품을 처리하는 일에는 지역 위원회가 관여하도록 했다. 제10조에 따라 1774년 12월 1일 이후부터 1775년 2월 1일 전까지 반입된 상품의 소유자는 상품을 반송하거나, 지역 위원회에 맡겨 수입 금지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거나, 위원회의 감독 아래 판매하도록 할 수 있었다. 이 감독 판매를 거친 상품은 구매·사용 제한의 예외로 인정했다. 지역 위원회는 주민의 협약 준수 여부를 살피는 데 더해 초기 반입 상품의 보관과 판매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수출 중단에는 더 긴 유예를 뒀다. 협약 말미에 열거한 과세·재판 관련 법률 조항과 보스턴 항구 봉쇄 등을 포함한 법률이 철회되지 않으면, 1775년 9월 10일부터 영국·아일랜드·서인도제도로 가는 모든 상품의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럽으로 수출하는 쌀은 예외로 두었다.

교역을 끊는 동안 식민지 내부의 생산과 판매도 함께 조정해야 했다. 협약은 양의 도축을 줄여 사육 두수를 늘리고 양모 제조업을 장려하는 한편, 도박과 연극 같은 유흥을 억제하도록 했다. 상인에게는 물자 부족을 이용해 가격을 올리지 말고 각자가 직전 12개월 동안 통상 적용하던 가격으로 팔도록 요구했다. 상복 제한과 생산 장려, 가격 규칙은 주민들이 불매를 지속할 수 있도록 소비와 공급을 함께 다룬 조치였다.

이 가격 규칙을 집행한 사례가 버지니아의 캐롤라인 카운티에 남아 있다. 역사학자 H. J. 에켄로드가 당시 보도를 모아 서술한 연구에 따르면, 현지 소위원회는 상인들이 가격을 올렸는지 확인하려고 장부를 조사했다. 1774년 12월 16일 소위원회는 일부 상인이 장부를 공개했지만 다른 상인들은 열람을 거부했다고 보고했다. 카운티 위원회는 주민들에게 열람을 거부한 상인들과 거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상인들은 뒤이어 장부 조사를 받아들였고, 조사 결과 협약을 지킨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위반 여부가 확인되기 전부터 거래 단절 경고가 장부 공개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쓰였다.

식민지 사이에도 공동 규칙을 지키도록 압박을 가했다. 제14조는 협약에 가입하지 않거나 이후 협약을 위반하는 북아메리카의 다른 식민지와 교역·교류를 끊도록 했다. 이미 공동 대응의 전례는 있었다. 1765년 인지세 회의에는 9개 식민지 대표가 모여 권리 선언을 채택했고, 제1차 대륙회의도 협약에 앞서 1774년 10월 14일 공동 권리 결의를 승인했다. 대륙협약은 이 공동 요구를 상품 반입과 판매, 주민 소비를 점검하는 지역 집행 절차로 구체화했다.

오늘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제1차 대륙회의를 소개하는 전시에서 지역 위원회 선출이 많은 당선자에게 첫 자치 참여 기회였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협약의 강압적인 집행이 일부 주민의 반감을 샀다는 점도 짚는다. 대륙협약 체제에서 주민들은 공동 규칙을 집행하는 권한을 행사했고, 이웃은 장부를 공개하고 소비를 제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영국에 맞선 경제적 저항은 식민지 안에서 누가 규칙을 판단하고 누구와 거래할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경험으로 넓어졌다.

버지니아에서는 전쟁기에 재판까지 맡던 지역 위원회의 기능도 상설 제도에 자리를 내줬다. 에켄로드에 따르면 1776년 들어 위원이나 민병대 장교들로 구성된 법정이 위원회의 재판 기능을 대신하기 시작했고, 상설 정부 수립 뒤에는 기존 카운티 법원 체제가 그 자리를 맡았다. 오늘날 버지니아주 헌법 제7조는 카운티와 시, 타운의 의결기구를 유권자가 선출하도록 하고, 지방정부의 조직과 권한은 주 의회가 법률로 정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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