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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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통합과 함께 줄루왕 신탁에 넘긴 280만 헥타르

줄루왕은 주민 공동체를 위해 토지를 수탁하고 이사회가 관리를 맡았다

박정우 작가

콰줄루나탈4분

콰줄루나탈주 출범 이틀 전인 1994년 4월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옛 콰줄루 자치정부의 토지 약 280만 헥타르를 줄루왕이 수탁하는 잉고냐마 신탁으로 넘기는 법률을 승인했다. 이틀 뒤인 4월 27일 새 잠정헌법이 발효되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동부에 새 행정구역인 콰줄루나탈주가 공식 출범했다.

콰줄루나탈은 기존 행정구역인 나탈주와 줄루인을 위한 자치 구역이던 콰줄루가 통합돼 출범한 주다. 주도는 피터마리츠버그이고, 최대 도시는 더반이다. 행정구역 통합과 별개로 폐지되는 자치정부의 토지는 중앙정부에 귀속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콰줄루의 땅은 왜 중앙정부 대신 줄루왕이 수탁하는 신탁에 남게 됐을까.

합쳐지기 전의 콰줄루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인종 분리 정책에 따라 줄루인을 위해 지정된 자치 지역인 홈랜드였다. 홈랜드는 흑인 거주지를 백인 거주지와 분리하기 위해 설정된 구역이었다. 콰줄루는 1977년 자치정부를 부여받았지만 영토가 하나로 이어지지 않고 현재의 콰줄루나탈주 안에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민주화와 함께 홈랜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다른 지역의 자치정부 토지는 새로 출범하는 중앙정부에 귀속되는 절차를 밟았다. 콰줄루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토지 이전이 추진됐다. 콰줄루 의회는 주 출범을 앞둔 1994년 4월 22일 잉고냐마 신탁법을 통과시켰다. 이어 대통령은 4월 25일 이 법을 최종 승인해 자치정부 토지를 예외적으로 신탁에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된 토지는 약 280만 헥타르로, 당시 콰줄루 정부 관할 면적의 93%에 달했다.

선거 참여와 왕실 지위를 둘러싼 협상

이러한 토지 이전은 첫 전인종 총선을 앞두고 잉카타자유당(IFP)이 선거 불참을 위협하던 시기에 추진됐다. 잉카타자유당은 줄루인을 지지 기반으로 삼은 정당이었다. 선거를 코앞에 둔 1994년 4월 19일,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백인 정부, 잉카타자유당은 총선 참여와 줄루왕의 제도적 지위 보호를 담은 화해·평화 합의문을 맺었다. 이 공식 합의문 자체에는 잉고냐마 신탁이나 토지 이전에 관한 조항이 적혀 있지 않았다.

역사 연구자 힐러리 린드는 협상 참여자의 메모와 의회 기록, 당사자 면담을 대조한 2019년 조사 기고에서 홈랜드 해체가 기존 권력 기반을 없애는 문제에 주목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콰줄루 자치정부를 이끌던 망고사투 부텔레지와 잉카타자유당은 선거를 거부해도 자치정부를 잃고, 참여해도 불확실한 선거 결과에 권력의 향방을 맡겨야 했다. 신탁은 이 딜레마를 풀 대안이었다. 주민의 생활에 필수적인 토지를 왕과 전통 지도자가 관리하면 선거 결과와 별개로 주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이런 기반의 보장이 선거 참여의 길을 열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당시 콰줄루 정부 수석장관이자 잉카타자유당을 이끌던 부텔레지는 린드의 기고에 실린 답변에서 토지 이전이 선거 참여 협상의 일부였다는 설명을 부인했다. 토지 이전과 선거 참여의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은 엇갈렸지만 옛 자치정부의 토지는 통합 주 출범 직전에 신탁으로 이전됐다.

국가 법질서에 편입된 신탁

법률상 이 토지는 줄루왕 개인의 사유재산이 되지 않았다. 개정법의 토지 귀속 조항에는 부족 공동체 구성원과 거주민을 대신해 옛 콰줄루 정부의 토지를 수탁할 책임이 명시됐다. 개정법은 신탁의 운영 목적도 주민 공동체의 물질적·사회적 복지와 이익으로 제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는 1997년 개정법을 제정해 이 신탁 제도를 국가 행정 체계에 편입했다. 줄루왕의 수탁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신탁과 토지의 관리 권한은 새로 설치한 이사회에 맡겼다. 줄루왕 또는 왕이 지명한 인물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나머지 이사는 법에서 정한 협의를 거쳐 중앙정부 장관이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토지와 관련해 과거 콰줄루 정부 부처가 수행하던 법정 행정 기능은 새로 출범한 중앙정부와 주정부 부처가 이어받았다.

피터마리츠버그에 있는 콰줄루나탈 주의회 건물. 위키피디아

개정법은 국가의 토지개혁 프로그램이 신탁 토지에도 적용되며, 정부는 시행 전에 신탁 이사회와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이사회가 토지 관리 직무를 수행할 때 기존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주정부의 행정과 별개로 줄루왕이 수탁하고 이사회가 관리하는 신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국가의 법질서와 감독 체계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땅에 사는 주민의 권리와 사법부의 판단

그렇다면 신탁 토지에 거주하는 수백만 주민은 어떤 권리를 가졌을까. 마이클 클라크와 놀룬디 루와야 연구자가 작성한 2017년 의회 위탁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신탁 토지의 주민들은 점유와 이용, 접근에 관한 명확한 권리를 갖고 있었다.

이 보고서가 인용한 콰줄루나탈 므싱가 지역의 관습법 조사에 따르면 외부인에게 토지를 새로 배정하려면 전통 지도자의 승인 외에도 이웃이 될 주민들, 지역 남성 평의회인 이반들라와의 협의가 필요했다. 이 보고서에는 신탁이 공동체 협의를 거치지 않고 맺은 임대계약에 대한 지적도 담겼다.

주민들이 가진 이러한 권리에 따라 신탁의 권한 행사도 제한됐다. 신탁 이사회가 주민들에게 토지 임대계약을 요구하며 임대료를 받자 법적 분쟁이 이어졌다. 2021년 판결에서 법원은 관습법상 배정받은 주거지와 경작지는 매입 대금이나 임대료 없이 이용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땅이라고 설명했다. 신탁이 이 권리와 법률로 보호받는 점유 권리를 임대료를 내는 계약으로 대체하면서 기존 권리자가 땅에 계속 살 권리를 침해한 것이 문제였다.

2021년 6월 11일 피터마리츠버그 고등법원은 관습법상 권리자이거나 법률로 보호받는 점유·비공식 토지 권리를 지닌 주민들과 신탁이 체결한 해당 주거용 임대계약을 위법이자 무효로 선언했다. 대상 토지에는 주거지와 경작지, 공동 이용지가 포함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2021년 판결 당시에도 콰줄루나탈 전체 면적의 약 30%는 잉고냐마 신탁 소유로 등록돼 있었다.

린드의 해석에 따르면 신탁을 통해 홈랜드 해체를 받아들이면서도 토지 관리 권한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어 선거 참여가 가능했다. 법률에 따라 통합된 주 안에서도 옛 콰줄루 정부 토지는 주민 공동체를 위한 별도 신탁이 보유하게 됐다. 왕은 주민 공동체를 위해 토지를 수탁하고 이사회는 주민들이 이미 가진 토지 이용과 상속, 점유 권리를 지키며 신탁 토지를 관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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