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백열전구 밝힌 에디슨, 매달 아연 판 무게 달아 전기 요금 청구했다

단일 기기 개발 넘어 발전과 배전, 계량 통합...중앙 전력 산업의 원형 구축

박정우 작가

1929년 10월 21일3분

97년 전 오늘인 1929년 10월 21일, 토머스 에디슨은 미국 미시간주 디어본에 복원된 멘로파크 연구실에서 전구 점등을 재연했다. 헨리 포드가 마련한 백열전구 발명 50주년 행사였다. 에디슨이 전구를 전기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고객 집의 아연 판을 매달 수거해 무게를 달고 사용료를 계산하는 기술도 있었다. 전구를 켜는 실험은 어떻게 집집마다 전기를 보내고 요금을 받는 사업으로 이어졌을까.

에디슨은 전구 개발 초기부터 전기 공급과 요금 부과 체계를 함께 구상했다. 1878년 그가 제시한 계획은 중앙 설비에서 전기를 생산해 지하 전선으로 보내고 고객의 사용량을 계량기로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에디슨은 이미 도시에서 운영되던 가스 공급 사업을 본떠 발전 설비부터 고객의 등기구까지 연결하려 했다.

고객은 방마다 전등을 개별적으로 켜고 끌 수 있어야 했다. 당시 야외 조명으로 쓰이던 아크등은 두 전극 사이의 방전 불꽃으로 빛을 내는 조명 장치였다. 직렬로 연결한 아크등은 빛이 너무 강한 데다 하나가 꺼지면 다른 등도 꺼졌으므로 방마다 전등을 개별적으로 켜고 끄는 실내 조명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에디슨은 각 전등이 다른 전등의 작동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병렬 회로를 채택했다. 이 배선 방식은 가스등을 하나씩 켜고 끄던 고객의 사용 방식에 맞았다.

병렬 회로에서는 같은 전압에 연결한 전등이 늘어날수록 전체 전류도 늘어난다. 전선에서 열로 손실되는 에너지를 줄이려면 굵은 구리선을 써야 했고 그만큼 비용이 들었다. 백열전구는 가는 심선인 필라멘트에 전류를 흘려 저항열로 빛을 내는 전등이다. 에디슨은 공급 전압을 높여 필요한 전류를 줄이고 그 전압에서 작동하는 고저항 필라멘트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구와 배선을 함께 설계했다.

필라멘트의 재료와 진공 기술도 이 설계에 맞아야 했다. 에디슨 연구실의 초기 탄소 전구는 유리구 안에 남은 공기 때문에 탄소가 타는 문제가 있었고 백금 필라멘트는 가격과 낮은 저항이 부담이었다. 연구진이 수은 진공 펌프를 개선하면서 저렴한 탄소를 다시 시험할 수 있게 됐다.

1879년 10월 22일자 찰스 배철러의 실험 기록에는 공기를 차단한 채 열을 가해 면사를 탄소 실로 만드는 탄화 과정을 거친 뒤 진공 유리구에 넣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이 전구는 13시간 반 동안 켜져 있었고 연구진이 밝기를 더 높이자 약 한 시간 뒤 유리구가 깨졌다. 프랜시스 엡턴은 전구의 저항과 밝기를 기록하고 발전기 1마력으로 켤 수 있는 전등 수를 산출했다. 연구진은 전구의 점등 성능과 발전기의 공급 능력을 함께 검토하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건물로 전기를 보내려면 배전망도 갖춰야 했다. 펄 스트리트 사업에서는 주 배전선과 급전선을 포함한 배전망을 구축하는 데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다. 구리 사용량을 줄이는 일은 전구 1개의 성능만큼이나 공급 비용을 좌우했다.

이 체계로 전기를 판매하려면 고객마다 사용량을 산정할 수 있어야 했다. 에디슨과 연구진이 만든 화학식 계량기는 고객 건물의 지하실에 설치됐다. 황산아연 용액을 채운 유리병마다 아연판 한 쌍이 들어 있었고 고객이 쓰는 전류의 일부가 계량기를 통과하면서 한 판의 아연이 다른 판으로 이동했다.

직원은 매달 기존 아연판을 수거하고 미리 무게를 기록한 새 판으로 교체했다. 직원은 수거한 판의 무게 변화를 측정해 전기 사용량을 산정하고 요금을 계산했다. 고객이 여러 전등을 개별적으로 켜고 끄더라도 계량기를 통과한 전류의 누적량을 아연의 이동량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전기요금은 이처럼 고객별 사용량에 따라 청구됐다.

1882년 9월 4일 뉴욕 맨해튼의 펄 스트리트 중앙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했다. 이 발전소는 석탄 보일러와 증기기관으로 발전기를 돌리고 지하 배전망으로 110볼트 직류를 공급했다. 당시 배전망은 2선식이었고 첫날 연결된 전등은 약 400개였다. 개별 건물마다 발전기를 두던 방식에서 나아가 중앙 발전소가 여러 고객에게 전기를 보내는 사업이 실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구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배전 방식 개선은 발전소 가동 이후에도 이어졌다. 에디슨은 1882년 11월 3선식 배전 특허를 출원해 이듬해 3월 특허 등록을 마쳤다. 3선식 배전은 전등에 걸리는 전압을 유지하면서 배전 전압을 높이고 중성선을 두어 구리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에디슨의 중앙 발전소 가운데 이 방식을 처음 적용한 발전소는 1883년 7월 펜실베이니아주 선버리에서 문을 열었다. 펄 스트리트 발전소의 고객도 늘어 1884년에는 500곳을 넘었고 연결된 전등은 약 1만 개에 달했다.

에디슨의 저전압 직류 시스템은 발전소 가까이에 고객이 밀집한 곳에 적합했다. 이 시스템으로 공급 거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높은 전압으로 멀리 보낸 뒤 변압기로 전압을 낮추는 교류 방식이 경쟁력을 얻었다. 전기를 보내는 기술이 달라지는 동안 중앙 설비와 배전망을 통해 여러 고객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사용량을 산정하는 사업은 확대됐다.

펄 스트리트 사업을 잇는 뉴욕의 전력회사 콘에디슨은 지금도 청구서에 계량기 검침 수치와 사용량, 적용 요금을 적는다. 콘에디슨은 전기 자체의 공급 비용과 전력망을 운영하는 배전 비용을 구분해 청구한다. 배전 비용에는 계량기 검침과 유지에 드는 비용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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