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오늘의 역사

음원 매장 연결한 아이팟, 컴퓨터 회사 애플 체질 바꿨다

기기와 음악 매장을 잇는 이용 방식...아이폰으로 이어져

박정우 작가

2001년 10월 23일4분

Illustration by Gemini

2001년 10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 타운홀 시청각실에서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 섰습니다. 잡스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흰색 기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주머니 속 1,000곡(1,000 songs in your pocket)"을 내세운 아이팟이었습니다.

인터넷 기술 게시판 슬래시닷의 공개 당일 게시글에는 "무선 안 됨, 노마드보다 작은 용량, 시시함"이라는 한 줄 평이 올라왔지요. 아이팟 가격은 당시 799달러였던 보급형 아이맥의 절반 수준인 399달러였고 노래를 넣으려면 매킨토시 컴퓨터도 있어야 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와 불황 속에서 2001회계연도에 적자를 기록한 애플은 비싼 음악 재생기의 쓸모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이미 휴대용 디지털 음악 재생기가 팔리고 있었으니 애플은 새 제품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부터 보여줘야 했습니다.

기존 제품으로 많은 노래를 편하게 들고 다니기는 어려웠습니다. 플래시 메모리 재생기 리오 500은 기본 용량이 64MB였고 메모리 카드로 용량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하드디스크를 쓴 노마드 주크박스는 6GB를 담았지만 크고 무거웠지요. 완충한 니켈수소 배터리로 128kbps 음원을 연속 재생할 때 제조사가 제시한 사용 시간은 4시간이었습니다. 저장 용량과 휴대성, 사용 시간을 함께 풀어야 했습니다.

노래를 옮기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USB 1.1의 최대 전송 속도는 초당 12메가비트였습니다. 저장 공간이 커지면 그만큼 많은 음악 파일을 컴퓨터에서 옮겨야 했지요. 기기를 작게 만들면서 음악을 옮기는 시간까지 줄여야 일상에서 쓸 만한 재생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애플은 부품과 전송 기술을 바꿔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드웨어 책임자 존 루빈스타인은 일본에서 도시바 관계자들을 만나던 중 1.8인치 크기의 5GB 하드디스크를 보았습니다. 도시바가 어디에 활용할지 고민하던 소형 드라이브였지요. 루빈스타인은 이 드라이브를 쓰면 작은 기기에도 많은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함께 방문한 제프 윌리엄스가 독점 공급 협상에 나섰습니다.

엔지니어 토니 파델이 개발팀에 합류했고, 포털플레이어라는 개발사가 하드웨어 참조 설계와 전원 관리·디스크 구동 등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했습니다. 애플 내부 팀은 Pixo가 제공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코드를 바탕으로 조작 화면을 다듬었습니다. 기계식 스크롤 휠을 돌려 긴 노래 목록을 한 손으로 훑을 수 있었고, 애플은 배터리 사용 시간을 최대 10시간으로 제시했습니다. 작은 기기에 많은 곡을 담은 뒤 찾아 듣는 일까지 연결한 것이지요.

음악 파일을 옮길 때는 애플의 고속 인터페이스인 파이어와이어를 썼습니다. 초당 400메가비트를 전송하는 규격인데요. 애플은 CD 한 장 분량은 10초 미만, 노래 1,000곡은 10분 미만에 기기로 옮길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이팟을 매킨토시에 연결하면 아이튠즈의 노래와 재생목록이 자동으로 옮겨졌고 다시 연결할 때는 새로 추가한 음악도 저장됐습니다. 사용자는 아이팟에 노래를 많이 저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래를 옮기는 데 드는 시간과 수고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생기를 편하게 만드는 일과 음악을 사고파는 방식을 바꾸는 일은 별개였습니다. 무료 파일 공유가 확산되는 가운데 음반사들은 2001년 12월 프레스플레이와 뮤직넷 같은 유료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음악을 휴대용 재생기로 옮기는 데 제약이 있었고 이용자들의 호응도 낮았지요. 컴퓨터에서 돈을 내고 들은 노래를 밖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어야 기기와 음악 판매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애플은 2003년 4월 28일 5대 음반사의 음악을 모아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이용자가 월 구독료 없이 한 곡당 99센트에 구매하고 아이팟에 넣어 들을 수 있게 했습니다. 앨범 전체도 팔았지만 좋아하는 곡만 골라 살 수도 있게 했지요. 소비자는 아이튠즈 안에서 음악을 찾고 미리 들어본 뒤 구매·정리하고 아이팟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한 곡씩 구매한 음악을 휴대용 재생기에 옮겨 들을 수 있는 판매 방식이었습니다.

애플은 음원 매장의 수익성이 낮아도 아이팟 판매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음악을 쉽게 구매해 아이팟에 넣을 수 있어 재생기를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이팟을 연결해 쓸 수 있는 컴퓨터도 다양해졌습니다. 2002년에는 윈도우용 아이팟이 나와 이용자가 MUSICMATCH Jukebox로 음악을 옮길 수 있게 됐고 2003년 10월에는 애플이 윈도우용 아이튠즈와 음악 매장도 선보였습니다. 매킨토시가 없어도 이용자가 음악을 사고 관리해 아이팟으로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2007년 1월 애플이 발표한 분기 실적에서 아이팟 매출은 전체 매출 71억 달러 가운데 48%를 차지했습니다. 2006년 12월 30일 끝난 2007회계연도 1분기의 실적입니다.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은 이제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음악 재생기 판매로 벌고 있었습니다. 2007년 1월 잡스는 회사 이름에서 컴퓨터를 떼어내고 애플(Apple Inc.)로 바꿨습니다. 애플은 컴퓨터 외에 다른 제품도 판매하는 회사가 됐고 회사 이름도 이에 맞게 바뀌었습니다.

2007년 1월 잡스는 터치로 조작하는 넓은 화면의 아이팟과 휴대전화, 인터넷 통신기기를 하나로 합친 아이폰을 공개했습니다. 이때 음악 이용도 새 기기로 이어졌습니다. 사용자는 PC나 매킨토시의 아이튠즈 라이브러리를 아이폰과 동기화해 기존에 구매한 음악과 동영상을 재생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샀다고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애플은 아이팟과 음악 매장에서 연결해 놓은 콘텐츠 이용을 전화와 인터넷 기능이 더해진 기기로 확장했습니다.

2022년 5월 10일 애플은 마지막 남은 모델인 아이팟 터치를 재고가 소진될 때까지만 판매한다고 알렸습니다. 음악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다니는 경험은 이미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다른 제품에 통합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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