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큐어넌의 빗나간 체포 예언, 집단 암호 풀이로 둔갑해 현실을 삼키다
힐러리 체포 무산되자 "기만은 필수" 변명...거짓말이 게임처럼 번지며 현실 정치 흔들어
2017년 10월 28일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포챈에 "폭풍 전의 고요"라는 제목을 단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미국 에너지부 최고 등급 기밀 인가를 가리키는 "Q 인가"를 쥐고 있다며 자신을 정부 내부자로 내세웠다. 그가 내놓은 첫 예고는 단호했는데, 이틀 뒤 새벽 힐러리 클린턴이 체포되어 전국적인 폭동이 일어나고 뒤이어 정재계 거물들이 줄줄이 수갑을 차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약속된 날이 지나도 체포 작전은 벌어지지 않았고, 보통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허황된 소문으로 끝났을 일이었다. 그런데 이 빗나간 예언은 폐기되는 대신 거대한 망상의 서막이 됐다.
큐어넌은 익명의 인물 Q가 흘린 조작 정보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극우 음모론 세력이자 정치 운동이다. 이 음모론의 핵심은 민주당 정치인과 금융 자본가들로 이뤄진 악마 숭배 집단이 전 세계 아동을 납치해 식인 의식을 벌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맞서 비밀 군사 작전을 치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세계관은 한 해 전 워싱턴의 피자 가게에 아동 성매매 조직이 있다는 소문에서 출발한 피자게이트를 흡수한 결과였다. 결국 피자게이트의 잔재 위에 정부 음모와 종말론이 결합하면서 거대한 컬트 신앙이 탄생했다.
Q 특유의 전달 방식은 이 허술한 거짓말을 세계적인 신앙처럼 키워 냈다. 실제로 Q는 완결된 문장으로 주장을 설명하는 대신 "토끼 굴을 따라가라"나 "쇼를 즐겨라" 같은 수수께끼와 단어 파편을 암호처럼 던졌다. 이 파편을 받아 든 이용자들은 수동적인 독자에 머물지 않고 단서를 꿰어 맞추는 군중이 되었다. 미국 소설가 겸 비평가인 월터 컨의 지적처럼 인터넷 군중은 남의 글을 읽기보다 직접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기에, Q의 암호는 참가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불안과 적개심을 마음대로 채워 넣는 도화지가 됐다.
교리 안에는 실패를 방어하는 안전장치도 이미 들어 있었다. 실제로 날짜를 못 박은 대량 체포가 무산될 때마다 Q는 "기만은 필수적이다"라는 한마디를 던지며 적을 속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 역시 군사 작전의 일부라는 변명을 댔다. 호주 인지심리학자 슈테판 레반도프스키가 지적했듯, 이 말 한마디로 음모론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봉쇄(self-sealing)했다. 결국 예측이 들어맞으면 음모가 사실이 되고, 어긋나면 적을 교란하기 위한 심리전의 증거가 됐다. 이 닫힌 회로 안에서 외부의 사실 확인과 비판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 연료가 됐다.

국가 기밀을 다룬다던 구원자의 실체는 초라했다. 언어학자들의 문체 분석과 탐사 보도로 드러난 구원자의 정체는 정보기관 요원이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폴 퍼버였다. 이후 글의 무대가 에잇챈으로 옮겨가자 사이트 관리자였던 론 왓킨스가 계정 통제권을 넘겨받아 문장을 이어 썼다. 결국 필리핀에서 양돈 농장을 운영하던 미국인 부자가 세운 게시판 관리자가 지어낸 가상의 사령관에게 수백만 명이 현혹됐다. 당시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집요한 추궁에 왓킨스는 카메라 앞에서 "대중에게 정보 분석 훈련을 가르쳐 준 시간이었다"라면서 "Q로서 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연출자가 막을 내리려 해도 무대에 오른 군중은 퇴장하지 않았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날, 군중은 취임 선서 직전 트럼프가 군대를 동원해 반역자들을 일망타진하리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취임식은 예정대로 끝났고 군사 작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때 계정을 쥐고 있던 론 왓킨스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고개를 들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며, 새 대통령이 취임했으니 헌법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라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결국 작전을 지휘하던 장본인이 패배를 인정하며 스스로 게임 종료를 선언한 격이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게임 규칙을 스스로 고쳐 쓰며, 연출자의 퇴장마저 작전의 일부로 받아들여 실현되지 않은 체포를 다음 날짜로 미뤘다. 실제로 그해 11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텍사스주 댈러스의 도심 광장 딜리 플라자에는 큐어넌 추종자 수백 명이 다시 모였다. 추종자들은 과거 비행기 사고로 숨진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부활을 믿으며 비 내리는 교각 아래를 종일 지켰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