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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빵보다 먼저 있었다, 감옥 아침상에 오르기 전에
화덕과 효모 없던 시절 곡물 조리의 기본이던 죽...1인당 쌀 소비량은 20년 만에 3분의 1 감소

과거 영국 교도소는 아침마다 수감자들에게 귀리죽을 배식했다. 이때 배식한 포리지(porridge)는 곡물에 물이나 우유를 넣고 끓여 낸 서양식 죽을 가리킨다. 교도소에서 이 죽을 먹여 온 세월이 워낙 길어 영어권에서는 지금도 옥살이를 "죽을 먹는다"(doing porridge)라는 속어로 부른다.
수감자만 이 죽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 조리병 역시 거칠게 빻은 귀리를 물에 끓여 수병들의 아침 식사로 배식했다. 당시 해군에서는 이 음식을 "버구"(burgoo)라 불렀다. 감옥과 군함이 나란히 같은 아침 식단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화덕이나 제빵 기술자가 없어도 솥 하나와 불만 갖추면 수백 명분을 한꺼번에 끓여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은 단순히 빵의 값싼 대체재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 식탁에 빵보다 먼저 오른 유서 깊은 주식이었다. 실제로 유럽에서 발효 빵과 화덕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 수확한 곡식을 조리하는 기본 방식은 죽이었다. 덴마크에서는 기원전 4200년경 이미 죽을 끓여 먹은 흔적이 발견됐다. 곡물 농사를 시작한 고대 사회는 대체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중부 유럽과 스칸디나비아의 늪지대에서 발굴된 5,000년 전 시신들의 위장 속에도 귀리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솥이 좋을 필요도 곡식을 곱게 빻을 필요도 없었다. 값싼 토기에 곡식과 물을 붓고 달군 돌을 넣기만 해도 손쉽게 익혀 낼 수 있었다. 발효에 필요한 효모나 제분 시설도 필요 없었다. 그 덕분에 죽은 척박한 토양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생명력을 이어왔다. 주요 곡물인 귀리는 600년 무렵 스코틀랜드에 들어왔다. 밀이 자라지 못하는 고지대 토양에서도 귀리는 강인하게 뿌리를 내렸다. 아무도 탐내지 않던 곡식이 그렇게 한 나라의 아침 식탁을 차지했다.

스코틀랜드 전통주의자들은 지금도 귀리와 물, 소금 외에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시판되는 죽은 이러한 절제와 거리가 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5년 표시 규정에서 통귀리의 수용성 식이섬유를 하루 3g 먹으면 "심장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문구를 제품에 표기할 수 있게 했다. 다만 1회 섭취량에 수용성 식이섬유가 0.75g은 들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덜 도정하고 굵게 자른 귀리는 오래 끓여야 하지만 풍미가 살아나고 쉽게 붇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가공을 덜 거친 제품이 더 비싼 값에 팔리기 시작했다. 과거 감옥 배식판에 담아 주던 음식과 무엇이 그리 달라졌는가.
한국에서도 죽은 곡식이 부족하던 시절 물을 타 양을 늘려 먹던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었다. 통계청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05년 80.7kg에서 2025년 53.9kg으로 감소했다. 20년 만에 3분의 1이 줄어든 셈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게 해주던 보리쌀은 이제 1년에 1.6kg을 소비하는 데 그친다. 곡물이 풍족해지자 죽은 주식 자리에서 내려와 환자식이 됐다. 영국에서는 감옥의 아침 식사에서 비롯된 속어 하나가 그 음식보다 더 오래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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