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세상의 흐름

코인베이스 결제 규약 x402, 28년 잠자던 웹 결제 코드 AI가 깨웠다

웹 표준이 28년 동안 비워 둔 결제 코드에 첫 손님 도착...투기 잔치 끝난 뒤 남은 1달러 미만 거래

리지

HTTP 402 결제2분73점

Illustration by Gemini

인터넷 이용자 치고 404 오류를 겪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다. 웹을 쓰다 보면 링크는 끊어지고 문서는 사라지기 마련인 탓이다. 이 404 Not Found는 웹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가 되어 티셔츠 문구로 쓰이고 유행어로도 널리 퍼졌다. 하지만 웹 통신 규약을 정리한 표준 문서에는 그 2칸 앞에 제정 28년이 지나도록 실물을 본 사람이 드문 코드가 하나 있다. 바로 402, Payment Required다. 대가를 치러야 보여준다는 뜻이다. 1997년 제정된 표준 문서는 이 코드에 딱 한 줄의 설명을 남겨 두었다. "이 코드는 미래의 사용을 위해 예약돼 있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인간 주의력의 한계다. 1999년 암호학자 닉 서보는 이 문제를 명쾌하게 짚었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살지 말지를 저울질하는 정신적 비용은 줄어들지 않는다. 기사 1편에 10원이라 해도 클릭할 때마다 "이 글이 과연 10원어치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면 뇌는 금세 지치고 만다. 그는 이 현상을 "정신적 거래 비용"이라 규정했다. 결국 시장의 승기는 정기 구독 모델이 잡았다. 한 달에 단 1번만 선택하면 되는 요금제 곧 의사결정을 묶음으로 파는 상품이었다.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의 전성기는 그렇게 열렸다.

x402는 바로 이 틈새를 메우기 위해 나온 표준 규약이다. 2025년 5월 가상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가 공개했으며 이름부터 그 빈방 번호에서 따왔다. 작동 원리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에이전트가 문서를 요청하면 서버가 402 코드와 함께 가격표를 보낸다. 얼마를 어느 가상자산 지갑으로 보내라는 안내 정보다. 에이전트는 달러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결제 서명을 요청 헤더에 얹어 서버에 다시 전송한다. 서버가 결제를 확인하면 비로소 정상 응답인 200 신호와 함께 문서가 열린다. 회원가입도 카드 번호 입력도 없이 단 2번의 통신 요청만으로 결제가 끝난다. 수수료는 1센트 미만이고 정산은 수 초 만에 마무리된다. 1997년 소액 결제의 채산성을 무너뜨렸던 건당 10~30센트 고정비가 이 구조에는 아예 없다. 출범 초기부터 아마존웹서비스, 앤스로픽,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이 이름을 올렸고 그해 9월에는 구글이 60여 개사와 함께 만든 에이전트 결제 규약 AP2가 x402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들어 거품이 걷히며 숙취가 찾아왔다. 하루 정산액은 연초 대비 93% 급감해 이달 현재 주평균 4만 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투기 잔치가 끝났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같은 장부의 다른 지표는 전혀 다른 흐름을 나타냈다. 거래 건수는 작년 12월 485만 건에서 올해 5월 289만 건으로 정산액 폭락세에 비하면 완만하게 줄었으며 누적 기준으로는 1억 건을 돌파했다. 투기성 자금은 빠져나갔지만 실제 이용자의 발길은 이어졌다. 판돈 큰 투기판이 걷힌 자리에서 1달러 미만 결제가 초당 수십 번씩 계산대를 두드리고 있다. 데이터 조회 1회, 제재 대상 확인 1회, 신용 조회 1회. 닉 서보가 예견했던 손님이 마침내 찾아왔다는 증거는 장부 속 자잘한 소액 결제 내역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표준 문서는 402를 "미래의 사용을 위해" 예약해 두었다. 그 미래가 도착하는 데 한 세대가 걸렸는데 막상 와서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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