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뒤의 숫자
흥국화재, 순익 1517억에도 주가 "1.4배" 갇힌 배경
순이익의 1.4배에 거래...주주에겐 돌아오지 않는 이익

저평가된 주식은 흔히 투자 기회로 꼽힌다. 이 잣대로 보면 흥국화재는 증시에서 가장 저평가된 종목에 든다. 지난해 순이익 1,517억원을 낸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2,149억원으로 순이익의 1.4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자기자본 8,369억원 대비 0.26배 수준에 그친다. 연 3% 수준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도 이 주식의 이익수익률은 70%를 웃돈다. 하지만 세부 조건을 따져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회사의 업력은 길고 실적 흐름도 견조하다. 1948년 고려화재해상보험으로 출범했다. 2006년 태광그룹에 편입됐고, 2009년 현재 사명으로 변경했다. 자산 12조 5,000억원 규모 손해보험사로 최근 12년 동안 한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순이익은 2022년 2,072억원, 2023년 2,955억원, 지난해 1,517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9년 평균으로 따져도 해마다 1,000억원씩 순이익을 거뒀다.
다만 이익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서가 붙는다. 2022년부터 실적이 가파르게 늘어난 배경에는 2023년 도입된 새 보험회계기준의 영향이 자리 잡고 있다. 보험사 이익은 장기 계약에서 미래에 발생할 몫을 회계상 미리 반영한 탓이다. 실제 유입되는 현금 흐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진짜 장벽은 따로 있다. 보험사는 벌어들인 이익을 마음대로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 지급여력비율이라는 자본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흥국화재의 지급여력비율은 지난해 말 196%를 나타냈다. 하지만 경과조치라는 완충장치를 제외하고 계산하면 156%로 낮아진다. 규제 기준을 여유 있게 웃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익을 배당으로 환원하지 못하고 사내에 유보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분기보고서의 배당 지표 항목은 온통 빈칸으로 남아 있다. 사실상 배당이 멈춘 상태다.
지분 구조 역시 발목을 잡는다. 흥국생명이 40.06%, 태광산업이 39.13%를 보유해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79.19%에 달한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통 물량은 21%에 그친다. 배당 재개 여부를 결정할 주체도 결국 이 79%의 지분을 쥔 대주주다. 태광그룹은 태광산업에 주주환원율 30%를 내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했지만, 흥국화재는 대상에서 뺐다.
주주에게 돌아가지 않는 이익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1,517억원의 순이익은 분명 재무제표에 기록됐고 자본으로 유보됐다. 하지만 소액주주가 그 결실을 나눌 통로는 막혀 있다. 시장이 계산을 잘못해 주가가 순이익의 1.4배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시장은 이 문턱의 높이를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다.
결국 이 종목의 주가가 움직일 계기는 단순한 실적 개선이 아니다. 실적은 이미 충분히 견조하다. 경과조치 없이도 자본비율이 개선돼 배당이 시작되는 날이거나, 그룹의 주주환원 계획이 이 회사까지 닿는 날이다. 그전까지 1.4배라는 주가는 손댈 수 없는 이익에 시장이 내린 냉정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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