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기름값이 오르자 보험사가 웃었다

싸서 사는 보험주 시대, 이 회사에서 먼저 끝나

리지

삼성화재해상보험2

Illustration by Gemini

기름값이 오르자 보험사가 웃었다. 운전이 줄어 사고가 줄어든 덕이다. 만년 골칫거리던 자동차보험이 올 상반기 296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화재는 최근 상반기 순이익 1조 3,723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다.

이 실적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따져볼 만하다. 회사는 상반기에만 건강보험과 종신보험 같은 보장성 상품으로 신계약 마진 1조 2,423억원을 쌓았다. 2023년부터 적용된 새 보험회계는 계약을 맺는 순간 미래 이익을 장부에 쌓아두고 해마다 조금씩 꺼내 쓰는 방식이다. 오늘 파는 보험이 앞으로 몇 년 치 이익을 미리 약속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회사의 실적 시계열에는 금이 하나 가 있다. 2021년까지 순이익은 6,456억에서 1조 1,247억원 사이를 오갔는데, 2022년부터 1조 6,267억, 1조 8,216억, 2조 768억원으로 계단을 올랐다. 회사가 갑자기 두 배 좋아졌다기보다, 재는 자가 바뀐 시점과 이익이 뛴 시점이 겹친다.

삼성화재해상보험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0 200,000 400,000 800,000 2020 2022 2024 2026 284,000 626,000
월봉 종가. 붉은 점이 최근 가격이다.

투자 쪽 숫자도 절반은 남의 공이다. 상반기 투자손익 7,880억원은 증시 활황 덕에 22% 늘었다. 자본총계가 1년 새 15조 4,319억원에서 24조 1,810억원으로 늘어난 데도 삼성전자를 비롯한 보유 주식의 평가익이 컸다. 증시가 준 것은 증시가 도로 가져갈 수 있고, 시장이 기대하는 삼성전자 특별배당도 남의 이사회가 정할 일이다.

그럼에도 주가가 5년 전의 2.7배가 된 배경은 실적보다 약속이다. 회사는 공시에서 "2028년까지 배당성향 50%를 목표로 주당배당금을 안정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이며 보유 자기주식을 5% 미만까지 소각하겠다고 적었다. 올 1분기에도 2,681억원어치를 태웠다. 밸류업 정책이 요구한 것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이행한 보험사다.

보험을 보는 시장의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얼마 전에는 한 증권그룹이 일곱 번 매각에 실패했던 생명보험사를 인수했다. 보험료로 조달한 장기 자금을 굴리는 미국식 모델을 노린다는 구상이다. 천덕꾸러기던 보험사가 서로 데려가려는 매물이 된 분위기다. 주가는 611,000원이다. 6월 고점 757,000원에서 19% 내려왔지만 1년 전보다 38% 높다. 시가총액 27조 2,796억원은 최근 1년 순이익의 15배, 순자산의 1.1배다. 순자산의 절반 수준에 거래되는 게 예사였던 업종에서 이 배수는 낯선 숫자다.

보험주를 싸서 사던 시대는 이 회사에서 먼저 끝났다. 지금 주가는 두 가지를 함께 전제한 평가다. 사상 최대 실적이 새 회계가 만든 착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50% 환원 약속이 2028년까지 지켜진다는 것. 싸서 사는 주식이 약속을 믿고 사는 주식으로 바뀌었으니, 이제 이 주가의 안전판은 약속의 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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