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닭 이름을 단 해운회사

매출 13조 2,149억원...가장 큰 덩어리는 닭 아닌 배

리지

하림지주2

Illustration by Gemini

하림이라는 이름은 닭에 붙어 있다. 마트 냉장고의 생닭 포장지, 치킨너겟 봉지에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그룹의 지주회사가 지난해 올린 매출 13조 2,149억원에서 가장 큰 덩어리는 배다. 자회사 팬오션이 올 상반기에만 3조 4,226억원을 벌었다. 벌크선으로 철광석과 석탄, 곡물을 나르는 회사다.

지주회사 시가총액 1조 2,444억원은 연결 자본총계 6조 9,608억원의 0.18배에 그친다. 자산 19조 6,695억원짜리 그룹의 주인 자리가 받는 평가다.

숫자를 액면 그대로 받으면 안 된다. 지주회사의 연결 장부에는 자회사 재산이 통째로 들어오지만, 상당 부분은 다른 주주 몫이다. 자본총계 6조 9,608억원 가운데 지배주주 몫은 3조 6,201억원이고 나머지 3조 3,406억원은 비지배지분이다. 절반이 남의 것이다. 이 기준으로 다시 재면 0.34배가 된다.

하림지주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5,000 15,000 20,000 2020 2022 2024 2026 10,550 10,640
월봉 종가. 붉은 점이 최근 가격이다.

그래도 남는 숫자가 있다. 하림지주는 팬오션 주식 2억 9,253만 주, 지분 54.72%를 갖고 있다. 팬오션 주가 5,710원을 곱하면 그 지분 가치가 1조 6,704억원으로 나온다. 여기에 상장사 하림 지분 57.37%의 시장가치 1,657억원을 더한 1조 8,361억원은 지주회사 시가총액의 148%에 이른다. 상장된 두 자회사 지분만으로 이미 시가총액을 넘긴다. 나머지 계열사의 가치는 0 이하로 매겨져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NS쇼핑과 제일사료, 팜스코, 하림산업이 있다.

배는 지금 잘 돌고 있다. 팬오션은 2분기 매출 1조 9,137억원에 영업이익 1,937억원을 냈다. 1년 전보다 각각 48%와 57% 늘었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으로 해상 운임이 뛴 덕이 컸다. 다만 그 1,937억원 중 지주회사 주주에게 오는 몫은 54.72%다. 그래서 배가 벌어도 그룹의 주당순이익은 상반기 1,166원으로 1년 전 1,876원보다 줄었다. 게다가 원화 가치는 지난달 이후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폭인 9.4% 올랐다. 운임을 달러로 받아 원화로 환산하는 회사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가치가 0으로 매겨진 쪽을 보면 이유가 보인다. 이 그룹의 차입금은 단기 5조 5,645억원에 장기 4조 3,424억원, 합쳐 9조 9,069억원이다. 그리고 하림산업이 2016년 4,525억원에 사들인 서울 양재동 부지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그해 도시첨단물류단지 시범지구로 지정했고 서울시는 2024년 2월 계획을 승인 고시했다. 하지만 땅을 산 지 10년이 되도록 아직 건물은 없다.

그러니 이 주가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시장은 이 지주회사를 팬오션 지분을 담은 그릇으로만 평가하고, 나머지 자회사와 양재동 땅은 빚을 갚는 데 쓰일 담보로 본다. 그 시각이 틀렸다고 증명하려면 착공과 분양이 나와야 한다. 10년째 나오지 않은 답이 나오기 전까지, 이 할인은 이유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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