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삼천당제약, 주가 85% 폭락에도 시총 4.5조...본업 가치는 2천억

4조원 얹힌 계약...원문은 아무도 확인 못 해

리지

삼천당제약2분

Illustration by Gemini

삼천당제약은 1943년 12월 출범했다. 81년 동안 경기 화성 향남제약단지에서 항생제와 소화기 치료제, 점안제를 생산해왔다. 자회사 옵투스제약 역시 점안제 전문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2,318억원, 순이익은 120억원이었다. 지방 제약단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전문의약품 회사다.

이 점안제 회사가 올해 3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주가는 한때 128만 4,000원까지 뛰어올랐다. 2020년 3월 2만 1,350원이었던 주가가 6년 만에 60배로 뛴 셈이다. 이야기는 화려했다. 먹는 비만 치료제인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을 미국 파트너사에 수출해 10년간 15조원 매출을 확보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해 매출 2,318억원인 회사에 15조원짜리 미래가 실렸다.

문제는 그 미래를 아무도 검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계약 상대와 조건이 담긴 원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계약 규모를 과장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한국거래소는 4월 이 회사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지난달 20일에는 미국 FDA 답변서를 받았다는 소식에 상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회사가 원문 공개를 거부하자 이튿날 주가는 하한가로 추락했다. 1억원이 1,400만원으로 줄었다는 투자자들의 탄식이 쏟아졌다. 시장은 이 회사를 황천당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주가는 18만 9,800원으로 고점 대비 85% 떨어졌다. 하지만 본업 실적은 소란의 뒤편에서 조용히 개선되고 있다. 최근 두 분기 영업이익은 55억원과 54억원으로 1년 전 한 자릿수에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도 9.9% 늘었다. 본업인 점안제 사업은 순항하고 있다.

여기서 간단한 계산이 나온다. 연간 순이익 120억원 규모의 제약사에 업계의 후한 배수를 적용하더라도 본업 가치는 2,000억원 수준이다. 현재 시가총액은 4조 4,522억원이다. 주가가 85% 무너진 뒤에도 시가총액의 90% 이상은 여전히 이야기의 몫으로 남아 있다. 최근 9년 평균 순이익인 70억원의 633배에 이른다. 주가 폭락은 이야기의 값어치를 낮췄을 뿐 이야기를 지우지는 못했다.

삼천당제약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하한가 0 500,000 750,000 1,000,000 2020 2022 2024 2026 47,900 184,700
월봉 종가. 붉은 띠에서 상한가 다음 날 하한가가 나왔다.

마침 시장의 바람도 다시 이쪽으로 불고 있다. 반도체에 쏠렸던 자금이 빠지며 바이오로 순환매가 유입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1개월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 10개 중 5개가 바이오·헬스였다. 다음 이야기도 이미 장전돼 있다. 회사는 이달 5일 경구용 인슐린의 임상시험 계획을 공시했다. 먹는 비만 치료제 다음 차례는 먹는 인슐린이다. 그 공시조차 같은 날 두 차례 정정 공시됐다.

원문을 공개하지 않는 계약은 검증할 수 없다. 검증할 수 없는 약속의 가치는 결국 믿음의 크기일 뿐이다. 81년 동안 점안제를 만들어온 회사의 시가총액에는 아직도 그 믿음이 4조원어치 얹혀 있다. 다음 상한가와 다음 하한가 사이 어디쯤에서 이 회사의 진짜 가치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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