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주가 뒤의 숫자

안약 회사가 코스닥 1위에 오르던 날

4조원 얹힌 계약...원문은 아무도 보지 못해

리지

삼천당제약2

Illustration by Gemini

삼천당제약은 1943년 12월에 세워졌다. 여든한 해 동안 경기 화성 향남제약단지에서 항생제와 소화기약, 안약을 만들어온 제약사다. 자회사 옵투스제약은 점안제 전문이다. 지난해 매출 2,318억원에 순이익 120억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느 지방 제약단지에나 있을 법한 전문의약품 회사다.

그 안약 회사가 올해 3월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주가는 128만 4,000원까지 갔다. 2020년 3월 2만 1,350원이었으니 6년 만에 60배다. 서사는 화려했다. 먹는 비만약인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을 미국 파트너사에 수출해 10년간 15조원 매출을 확보했다는 발표였다. 한 해 매출 2,318억원인 회사에 15조원짜리 미래가 붙었다.

문제는 그 미래를 아무도 검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계약 상대와 조건의 원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계약 규모를 부풀렸다는 의혹이 번지자 한국거래소는 4월 이 회사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했다. 지난달 20일에는 미국 FDA 답변서를 받았다는 소식에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회사가 원문 공개를 거부하자 이튿날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1억원이 1,4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투자자의 사연이 쏟아졌다. 시장은 이 회사를 황천당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삼천당제약 주가 (단위=원, 월봉 종가) 하한가 0 500,000 750,000 1,000,000 2020 2022 2024 2026 47,900 184,700
월봉 종가. 붉은 띠에서 상한가 다음 날 하한가가 나왔다.

지금 주가는 18만 9,800원, 고점 대비 85% 아래다. 그런데 본업의 숫자는 오히려 이 소란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좋아지고 있다. 최근 두 분기 영업이익이 55억원과 54억원으로, 1년 전 한 자릿수에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은 9.9% 늘었다. 안약 장사는 잘되고 있다.

그래서 계산이 하나 남는다. 순이익 120억원짜리 제약사에 제약업의 후한 배수를 주더라도 본업 가치는 2,000억원 안팎이다. 지금 시가총액은 4조 4,522억원이다. 85%가 무너진 뒤에도 시가총액의 90% 이상이 여전히 이야기의 몫이라는 뜻이다. 최근 9년 평균 순이익 70억원으로 나누면 633배다. 폭락은 이야기의 몸값을 할인했을 뿐 이야기를 지우지는 못했다.

마침 바람의 방향도 다시 이쪽이다. 반도체에 쏠렸던 돈이 빠지며 바이오로 순환매가 오느냐는 말이 나온다. 최근 한 달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 10개 중 5개가 바이오·헬스였다. 다음 이야기도 이미 장전돼 있다. 이달 5일 회사는 경구용 인슐린의 임상시험 계획을 공시했다. 먹는 비만약 다음은 먹는 인슐린이다. 그 공시조차 같은 날 두 번 기재정정됐다.

원문을 보여주지 않는 계약은 검증할 수 없다. 검증할 수 없는 약속의 가치는 믿음의 크기일 뿐이다. 여든한 해 안약을 만든 회사의 시가총액에 아직도 그 믿음이 4조원어치 얹혀 있다. 다음 상한가와 다음 하한가 사이 어디쯤에서, 이 회사의 진짜 가치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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