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35엔 사치품으로 태어난 라면, 68년 만에 국수값의 3분의 1
기름에 튀겨 말린 국수가 하루짜리 끼니를 1년짜리 재고로 바꿔...지금은 한 해 1,000억 인분

1958년 8월 25일 일본 식료품점 진열대에 노란 국수 한 뭉치가 첫선을 보였다. 치킨라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국수의 가격은 35엔으로 당시 우동이나 메밀국수 한 그릇의 6배에 달했고 끓는 물을 붓고 2분이면 먹을 수 있어 마법의 라면으로 통했다. 라면은 애초에 값싼 음식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면을 건조하는 기술에서 결정적 혁신이 나왔다. 닛신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는 48세 때 자택 뒤뜰 오두막에서 몇 달 동안 매달린 끝에 쪄낸 면을 뜨거운 기름에 살짝 튀겨 수분을 날리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 공정으로 면의 수분이 30~50%에서 2~5%로 줄어들었다. 그 덕분에 상온에서 4개월에서 12개월을 보관할 수 있는 국수가 완성됐다. 안도 창업자가 내건 국수의 조건 가운데 지금도 닛신 회사 소개에 실린 두 항목은 "질리지 않는 맛일 것"과 "쌀 것"이다. 이 혁신으로 국수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루면 상해 버리던 끼니가 창고에 쌓아 두고 배에 실을 수 있는 재고가 된 것이다. 다만 즉석면 발명의 원조를 두고는 대만 핑둥의 장궈원이 1956년 즉석면 특허를 냈다는 기록이 대만 쪽에 남아 있다. 장궈원은 1961년 그 특허를 2,300만엔에 안도에게 넘겼다고 한다.
공장이 돌아가려면 튀기는 기술 말고도 하나가 더 필요했다. 이에 앞서 1953년 무라타 요시오가 면을 기계로 물결 모양으로 구부리는 방식을 개발했다. 이 방식 덕분에 생산 속도가 수작업보다 수십 배 빨라졌다. 라면 면발이 지금까지 구불구불한 형태를 띠는 이유다. 사람 손과 매장 입지에 묶여 있던 원가 부담은 그렇게 줄어들었다. 그 뒤 일반 식당의 국수 한 그릇 가격은 임대료와 인건비를 따라 올랐다. 반면 봉지 라면 값은 생산량 증가에 힘입어 내렸다.
1964년 안도 모모후쿠는 즉석식품 업계 단체를 설립해 표준 규격을 제정했다. 포장에는 제조일자를 표기하도록 했고 용기 안쪽에는 물을 붓는 기준선을 넣었다. 지금 컵라면 안쪽에 그어진 선은 그때 확립된 기준이다.
1966년 미국 시장을 개척하러 간 안도는 현지인들이 면 뭉치를 반으로 쪼개 종이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서 착안해 1971년에 출시한 컵라면은 아예 그릇까지 상품에 포함했다. 부엌이 없어도 한 끼 식사가 해결되자 라면은 아시아 밖으로 뻗어 나갔다.
1997년 안도는 해외 제조사까지 아우르는 단체를 따로 설립했다. 전 세계 라면 소비량을 집계하는 곳도 바로 이 단체다. 이 국수 뭉치는 2000년 일본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 20세기 일본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혔다. 2018년 세계에서 1,036억 인분이 팔렸고 2023년에는 중국 한 나라에서만 422억 인분이 팔렸다. 1인당 소비량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아 2014년 74.1개에 달했다. 지금 일본에서 치킨라멘 한 봉지는 120엔 안팎으로 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국수 한 그릇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처음 팔린 날 6배였던 가격이 68년 만에 3분의 1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값싼 끼니가 되면서 염분과 지방은 많고 단백질과 식이섬유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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