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돈 받고 팔지 말라던 리눅스, 35년 뒤 클라우드의 80%
첫 저작권 조항은 실비조차 못 받게 막아...반년 만에 판매 허용하자 기업들 몰려

1991년 8월 25일 헬싱키대의 한 학생이 미닉스 사용자 뉴스그룹에 글을 올렸다. 미닉스는 대학 교육용으로 개발된 소형 운영체제였다. 21세의 리누스 토르발스는 자신이 개발 중이던 운영체제를 이렇게 소개했다. "무료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 그저 취미일 뿐 GNU처럼 방대하고 본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GNU는 당시 자유소프트웨어 진영이 수년째 추진하던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였다. 그해 1월 구입한 386 PC 한 대에서만 구동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처음 적용된 저작권 조항은 지금의 리눅스와 정반대였다. 소스코드는 반드시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유료 배포는 할 수 없으며 실비조차 받을 수 없다"고 명시했다. 소프트웨어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할 통로는 애초에 막혀 있었다. 이 조건이 유지된 반년 동안 리눅스는 대학 FTP 서버에 갇혀 있었다.
1992년 2월 1일 이 조항이 바뀌었다. 토르발스는 운영체제의 핵심인 커널을 GPL 라이선스로 재공개했다. 누구든 가져다 유료로 판매할 수 있되 코드를 수정해 판매한 사람은 그 소스코드를 동일한 조건으로 공개해야 했다. 유료 판매를 금지하던 조항이 사라진 자리에 소스코드 공개 의무가 들어섰다. 훗날 그는 리눅스를 GPL로 배포한 결정이 자신이 내린 선택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고 회고했다.
효과는 코드보다 시장에서 먼저 나타났다. 커널 1.0이 공개된 1994년 레드햇과 수세가 각각 배포판 1.0을 출시했다. 커널은 무료로 가져다 쓰되 설치와 기술 지원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기업들이었다. 2009년에는 레드햇의 시가총액이 유닉스 워크스테이션 강자였던 선마이크로시스템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2년에는 리눅스 서버 매출이 나머지 유닉스 전체를 넘어섰다.
물론 당시 리눅스를 과소평가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1992년 미닉스를 개발한 앤드루 타넨바움은 동일한 게시판에 "리눅스는 구식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커널 구조가 구식인 데다 인텔 386에 얽매여 다른 기종으로 이식할 수 없고 코드를 통제할 주체가 없다는 지적이었다. 지금 리눅스는 그 어떤 운영체제보다 많은 기종에 탑재돼 있다. 어떤 코드를 커널에 수용할지는 여전히 토르발스가 결정한다.
공짜라는 말은 가격이 없다는 뜻이지 개발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2017년 커널 코드를 분석한 결과 85%가 넘는 분량을 인텔과 삼성전자, 구글에서 급여를 받는 개발자들이 작성했다. 2001년의 한 연구는 레드햇 배포판 하나에 3,000만 줄의 코드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처음부터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8,000명이 1년 동안 매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2024년 퍼블릭 클라우드에서 실행되는 작업의 80% 이상이 리눅스 기반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500대는 2017년부터 한 대도 빠짐없이 리눅스로 작동한다. 휴대전화 10대 중 7대는 리눅스 커널 기반의 안드로이드를 쓴다. 그 8월의 글에는 빗나간 예측이 셋 있었다. 방대하거나 본격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른 기종으로 이식할 수 없다는 지적은 틀렸다. 가진 장비가 그것뿐이라 AT 하드디스크 외에는 영영 지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 역시 틀렸다. 공짜라고 적은 대목 하나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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