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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 읽은 편지를 도로 붙이는 기계...비밀경찰의 600년
16세기 유럽은 종교재판소를 본떠 감시 기구를 두고...명나라는 150년 앞서 황족까지 압송

흔히 슈타지로 불린 동독 국가보안부에는 우편 검열 부서가 있었다. 슈타지와 같은 비밀경찰은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 정권이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조직한 사찰 기구였다. 이 사찰 기구의 우편 검열 부서에는 기계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몰래 뜯어본 편지 봉투를 자동으로 다시 밀봉하는 장치였다.

이러한 감시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다. 16세기에 이르러 국가는 비로소 국민 내면을 사찰하는 전담 부서를 두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 간 경쟁 속에서 자원 통제력을 극대화하려던 통치자들은 종교재판소를 본보기로 삼았다.
프랑스 혁명정부의 경찰장관 조제프 푸셰는 사회 전체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했고 유럽 각국의 비밀경찰이 이를 본떴다. 이 체계의 전성기는 1815년부터 1860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유럽 대다수 국가에서 투표와 집회, 결사와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돼 반대파에게는 음모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하지만 1860년 이후 자유화가 확산하면서 비밀경찰은 물러났지만 제정 러시아만은 예외였다.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앞선 감시 기구의 사례가 있다. 명 태조가 1360년대에 세운 금의위는 처음에는 황제를 호위하고 민정을 살펴 모반의 조짐을 직보하는 조직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수사권과 재판권까지 장악해 일반 법정의 판결을 뒤집었고 황족까지 압송해 조사했다. 1420년에는 환관이 관장하는 또 다른 정보기관 동창(東廠)까지 들어섰다. 이 두 기구를 모두 둔 명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경찰국가나 다름없었다.
독재자가 없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비밀경찰은 골칫거리였다. 1945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사적인 기록에 "게슈타포도 비밀경찰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FBI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적었다. 범죄자를 잡아야 할 조직이 성추문을 들추고 협박을 일삼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작 비밀경찰을 운용한 권력자의 불안도 컸다. 독재자는 내부를 억눌러 질서를 유지할 만큼 보안기구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 힘이 자신을 겨누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기구를 여럿으로 나누어 어느 1곳에도 힘이 쏠리지 않게 하고 혈연과 지연, 종파를 따져 충성심이 확실한 사람만 골라 앉힌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번번이 어긋난다.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야당 대통령 후보를 납치했고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진 현장에도 그 조직이 있었다.
봉인은 언젠가 뜯기기 마련이다. 2011년 이집트에서 시위대가 국가보안수사국 본부에 진입해 고문 도구와 비밀 감방을 찾아냈다. 시민을 사찰한 문서도 그곳에 있었다. 내무장관은 3월 15일 그 조직의 해체를 발표했다. 편지는 감쪽같이 다시 봉합할 수 있어도 그 편지를 왜 뜯었는지 적은 기록까지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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