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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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 읽은 편지를 도로 붙이는 기계...비밀경찰의 600년

16세기 유럽은 종교재판소를 본떠 감시 부서를 두고...명은 그보다 150년 앞서 황족까지 잡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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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2

Illustration by Gemini

동독 국가보안부, 흔히 슈타지라 불리던 조직에는 우편 검열 부서가 있었다. 그 부서에 기계 한 대가 있었다. 뜯어본 편지봉투를 자동으로 다시 봉합하는 기계였다.

슈타지 우편검열 부서가 쓰던 기계. 뜯어 읽은 편지 봉투를 자동으로 다시 붙였다. 사진 Appaloosa, CC BY-SA 3.0, 위키피디아

이만한 체계를 갖추기까지는 몇백 년이 걸렸다. 국가가 국민의 내면을 사찰하는 일을 전담 부서에 맡기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져 통치자들이 자원 통제를 극대화하던 무렵이었고 본보기로 삼은 것은 종교재판소였다.

프랑스 혁명정부의 경찰장관 조제프 푸셰는 사회 전체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했고 유럽의 정치경찰이 이를 모방했다. 전성기는 1815년부터 1860년까지였다. 그 시기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투표와 집회, 결사와 언론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돼 반대파에게는 음모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1860년 이후 자유화가 확산하며 정치경찰은 물러났고 제정 러시아 같은 곳만 예외였다.

그보다 앞선 사례는 동아시아에 있다. 명 태조가 1360년대에 세운 금의위는 처음에는 황제를 호위하고 민정을 살펴 모반의 조짐을 황제에게 직보하는 조직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수사권과 재판권까지 장악해 일반 법정의 판결을 뒤집었고 황족까지 압송해 심문했다. 1420년에는 환관이 관장한 정보기관 동창(東廠)이 하나 더 생겼다. 이 둘을 합쳐 놓고 보면 명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경찰국가 중 하나였다.

독재자가 없는 곳에서도 비밀경찰은 골칫거리였다. 1945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사적인 기록에 "게슈타포도 비밀경찰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FBI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적었다. 범죄자를 잡아야 할 조직이 성추문을 들추고 협박을 일삼는다는 이유였다.

정작 비밀경찰을 운용한 쪽은 더 불안했다. 독재자는 내부를 억눌러 질서를 유지할 만큼 보안기구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 힘이 자신을 겨누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기관을 여럿으로 분할해 어느 한곳에도 힘이 쏠리지 않게 하고 혈연과 지연, 종파를 따져 충성심이 확실한 사람만 골라 앉힌다. 하지만 계산은 번번이 빗나간다.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야당 대통령 후보를 납치했고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진 현장에도 그 조직이 있었다.

봉인은 언젠가 뜯기기 마련이다. 2011년 이집트에서 시위대가 국가보안수사국 본부에 진입해 고문 도구와 비밀 감방을 찾아냈다. 시민을 사찰한 문서도 그곳에 있었다. 내무장관은 3월 15일 그 조직의 해체를 발표했다. 편지는 감쪽같이 다시 봉합할 수 있어도 그 편지를 왜 뜯었는지 적은 기록까지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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