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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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의학이 유일하게 알아본 암, 그래서 가장 많이 잘렸다

4천 년 전 파피루스에 기록된 8건 "치료법이 없다"...더 많이 절제할수록 낫다는 믿음은 1963년에야 꺾여

리지

유방암2

Illustration by Gemini

4천 년쯤 전 이집트의 한 서기가 유방에 생긴 종양과 궤양 8건을 파피루스에 기록했다. 파피루스에 적힌 처치는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방법뿐이었고 서기는 이 병에 "치료법이 없다"는 한 줄을 덧붙였다. 그 8건은 빠짐없이 기록하면서도 당대의 어떤 서기도 간이나 폐에 생긴 암은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부검이 드물었던 시대라 몸속에서 자란 암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방암만 달랐다. 유방암은 유방에 생기는 악성 종양을 통칭한다. 이 병은 손으로 만질 수 있었고 악화하면 종양이 피부를 뚫고 나와 검은 분비물을 뿜어냈다. 발병 원인을 검은 담즙 때문으로 보던 시대에도 병의 실체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만져지는 자리에는 손이 간다. 유방 절제 수술 기록은 6세기 비잔틴 궁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7세기 네덜란드 외과의사 니콜라스 튈프는 "유일한 치료는 제때 하는 수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세기 영국 외과의사 리처드 와이즈먼이 집도한 12건의 기록을 보면 2명은 수술대에서 숨졌고 8명은 얼마 못 가 암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회복한 환자는 2명이었다. 마취도 소독도 없던 시대의 일이다.

18세기의 유방 절제 수술을 그린 도판. 위키피디아

유방암은 위생이 개선되고 전염병이 잦아들어 평균수명이 늘어난 19세기부터 급증했다. 그전까지 여성들은 대개 유방암이 발병할 나이에 이르기 전에 숨졌다. 환자가 늘자 수술 범위도 커져 1882년 미국의 윌리엄 홀스테드가 시작한 근치 유방절제술은 양쪽 유방과 겨드랑이 림프절은 물론 그 아래 가슴 근육까지 모두 절제했다. 만성 통증과 후유 장애가 남았지만 재발을 막으려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더 많이 잘라낼수록 낫다는 믿음은 조직을 광범위하게 절제하는 초근치술로 이어졌다. 1963년 10년 생존율을 비교해보니 절제 범위를 넓힌 쪽과 덜 절제한 쪽의 결과가 같았다. 명백한 통계가 나오고서야 초근치술은 막을 내렸다.

손에 만져지는 병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사람들의 행동을 좌우한다. 한쪽에 암이 생겼을 때 반대쪽 유방까지 절제해도 생존율은 달라지지 않으며 20년 안에 반대쪽에 암이 생길 확률은 7%다. 스스로 가슴을 만져 멍울을 찾는 자가 검진 역시 이 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낮추지는 못한다. 그래도 직접 만져 확인하고 잘라내는 편이 마음의 불안을 덜어줄 뿐이다.

분홍 리본도 그 자리에 있다. 비용이 적게 들고 눈에 잘 띄는 덕에 유방암은 기업이 가장 즐겨 후원하는 암이 됐다. 4천 년 전 서기가 남긴 8건은 그가 직접 만질 수 있었던 8건이었다. 그가 덧붙인 문장은 이제 옛말이 됐다. 미국에서 진단받은 여성의 92%가 5년 넘게 생존한다. 다만 손에 잡히는 병일수록 손길이 더 간다는 사실만은 4천 년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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