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벽지만도 못하다는 조롱에서 이름을 얻은 그림들

살롱에서 탈락한 화가들이 주식회사를 세워 연 1874년 전시...검정을 버리고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채색

리지

인상주의2분100점

Illustration by Gemini

1874년 4월 파리 카퓌신 대로에서 화가 30명이 사비를 모아 독자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 공간은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를 빌려 마련했다. 출품작 가운데는 클로드 모네가 항구의 일출을 그린 유화 "인상, 해돋이"가 있었다. 풍자 신문 르 샤리바리의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관람객 둘의 대화 형식으로 이 전시를 혹평했다. 기사에는 "도배지도 저 바다 그림보다는 완성이 잘 돼 있다"는 조롱이 실렸다. 그가 기사 제목에 쓴 "인상주의자"라는 표현이 그대로 새로운 미술 사조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인상주의는 변화하는 빛과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해 눈에 보이는 인상을 화폭에 담는 미술 사조다.

화가들이 사비를 털어 따로 전시를 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 화단은 아카데미가 해마다 여는 심사 전시 살롱이 좌우했고 여기에 걸려야 주문도 명성도 따랐다. 1860년대 내내 모네와 동료들은 출품작의 50%가 살롱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에 1873년 12월 이들은 회사를 설립했다. 사명은 무명 화가·조각가·판화가 주식회사였고 회원들은 살롱에 출품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까치. 클로드 모네, 1868~1869년, 오르세 미술관. 위키피디아

혹평을 산 까닭은 그림이 미완성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밖에서 본 풍경을 화실로 가져와 완성하는 대신 강가와 들판에 이젤을 세우고 현장에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전까지 화가는 안료 가루를 기름에 개어 동물 방광에 담아 썼으나 19세기 중반 주석 튜브에 든 기성 물감이 나왔다. 물감을 챙겨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되자 빛이 바뀌기 전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붓질은 짧고 두껍게 끊어 쳤고 색은 팔레트에서 섞는 대신 화면에 나란히 칠했다. 검정 물감은 아예 쓰지 않고 어두운 부분은 보색을 섞어 표현했다. 그림자에는 하늘의 푸른빛이 반사된다고 여겨 파란색 물감을 썼다. 눈 덮인 들판에 드리운 푸른 그림자에서 착안한 기법이었다.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 위키피디아

그림이 팔리지 않던 시절에도 이들의 작품을 꾸준히 사준 인물이 있었다. 화상 폴 뒤랑뤼엘은 인상파 그림을 사들여 런던과 뉴욕에서 전시를 열었고 파리에서도 줄곧 선보였다. 시슬레는 1899년 가난 속에 눈을 감았지만 모네는 1880년대 초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그 무렵에는 살롱에 걸리는 그림들의 색조마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매끈한 마무리는 그대로 둔 채 밝기만 빌려 쓴 결과였다.

오늘날 이 화풍은 미술관보다 화면과 종이 위에서 더 자주 만난다. 여행 포스터의 물빛, 카페 종이컵에 인쇄된 수련, 역광을 살리고 그림자에 푸른 기운을 남기는 사진 앱의 보정이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 도배지만도 못하다던 그 바다 그림은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 걸려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 길게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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