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화가여 꽃을 그리지 말라, 마법사가 연 파리의 살롱
눈앞의 현실을 지운 자리에 채운 전설과 꿈...클림트의 금빛은 오늘 장바구니에 실려

1892년 3월 파리의 한 화랑 앞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주인공은 화가도 미술상도 아니었다. 스스로 마법사를 자처한 소설가 조제팽 펠라당은 칼데아어로 마법사를 뜻하는 사르를 이름 앞에 붙이고 다녔으며 두 해 전에는 장미십자라는 결사까지 창설한 터였다. 이 결사가 매달린 목표는 예술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일이었다.
화가들을 불러 모으며 펠라당은 그리지 말아야 할 대상의 목록부터 내놓았다. 그가 전해에 시인 한 사람과 백작 한 사람을 끼고 발표한 미학 계명은 "당대의 삶을 그린 어떤 것도" 금지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집에서 기르는 짐승과 사냥에 쓰는 짐승이 그다음 금지 대상에 올랐고 꽃과 정물과 과일과 소품 묘사가 뒤를 이었다. 목록의 끝에는 "화가들이 뻔뻔하게 내놓는 그 밖의 연습들"이라는 경고가 붙었으며 대신 전설과 신화와 우의와 꿈에 기댄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받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까다로운 목록을 받아 든 화가들은 반발하는 대신 화랑으로 몰려들었다. 벨기에와 스위스와 네덜란드 등지에서 그림이 실려 왔다. 당시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조르주 루오도 그 자리에 작품을 걸었다. 전시 도록에서 이들은 사실주의를 무너뜨리겠다고 밝혔는데 눈앞의 현실을 지워낸 화면을 상상력으로 채울 비어 있는 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화풍으로 모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화가는 금세공처럼 빽빽하고 번쩍이는 화면 한가운데 살로메를 앉혔고 어떤 화가는 벽화처럼 납작하고 서늘한 화면에 사람 몇을 세워 둔 채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들이 공유한 유일한 공통점은 야외에 이젤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가들은 눈앞의 빛 대신 기억으로 그렸고 원근과 무게와 입체를 버려 그림을 다시 평면으로 돌려놓았다.

눈앞의 세상을 문밖에 세워 둔 이 상징주의 그림들은 뜻밖의 길을 통해 세상에 퍼졌다. 그 무렵 잡지와 광고 포스터와 삽화집이 빠르게 늘어났고 상징주의는 그 인쇄물을 타고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인쇄 복제가 늘수록 그림은 가벼워졌다. 부르주아의 취향이 조악하다며 외면했던 화풍이 결국 그 취향의 값싼 대용품 쪽으로 밀려간 셈이다.
1897년 살롱은 문을 닫았고 마법사의 계명도 함께 잊혔다. 하지만 금빛 바탕에 껴안은 두 사람을 그린 클림트의 화면은 오늘도 장바구니와 우산과 휴대전화 뒷면에 인쇄되어 팔린다. 펠라당이 화가들에게서 빼앗으려 했던 그 소품들이 이제 그림을 싣고 다니는 그릇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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