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소설 밖의 하루

젖은 밭 열두 에이커와 스물한 해짜리 종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 씨와 엘리자베스를 빌려...원작에 없는 늦여름의 하루

리지

오만과 편견3

Illustration by Gemini

새벽에 한 차례 내리던 비가 멎었다. 베넷 가의 저택 롱본의 서재 문은 닫혀 있었다. 이 집에서 문이 닫히면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식구들은 그 뜻을 알면서도 하루에 두세 번씩 잊었다.

힐 부인이 문을 두드렸다. "홀트 씨가 왔습니다. 아래 밭 부치는 소작인입니다. 부엌에 들어가 있으라 해도 마다하고 현관에 서 있습니다."

들어온 사내는 쉰이 넘어 보였다. 장화 옆면에는 마른 흙이 겹겹이 묻어 있었고 모자를 두 손으로 쥔 채 앉으라는 권유를 세 번 듣고서야 의자 끝에 겨우 엉덩이를 붙였다.

"나리, 아래 열두 에이커 일입니다. 올해도 밀이 반은 쓰러졌습니다. 뿌리가 물에 잠긴 탓입니다. 그 밭은 비가 한 번 오면 사흘을 갑니다."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자네 선친도 같은 말을 하러 이 방에 왔었지. 그때는 밭이 마르기를 기다려 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던 것 같은데."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닙니다." 홀트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남에게 받아 적게 한 듯 글씨가 정갈했다. "구운 토관을 땅에 묻어 물길을 내면 됩니다. 이웃 주에서 하는 방식을 보고 왔습니다. 에이커에 5파운드 열두 에이커면 60파운드가 듭니다. 그러고 나면 같은 밭에서 해마다 6파운드어치가 더 납니다. 십 년이면 원금을 건집니다."

"자네 계산은 나무랄 데가 없군."

"그래서 스물한 해 계약을 청하러 왔습니다. 토관이 삭기 전에 제 손자가 저 밭을 갈고 있어야 제가 오늘 돈을 들입니다."

베넷 씨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딱히 닦아낼 것도 없는 안경이었다.

"홀트, 자네에게 스물한 해를 줄 수가 없네. 나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닐세. 얹혀사는 사람이지. 롱본은 남계 상속으로 묶여 있어 내가 눈을 감으면 콜린스라는 먼 친척에게 통째로 넘어가네. 오늘 자네와 스물한 해를 약속해도 그 계약서는 내가 죽는 날 효력을 다하네. 그다음은 콜린스 씨 마음에 달렸네."

홀트는 한참 말이 없다가 물었다. "나리,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쉰둘일세. 자네는 내 나이가 궁금한 것이 아닐 테지. 내가 몇 해나 더 살겠느냐겠지. 그건 나도 모르네. 자네의 60파운드를 내 목숨에 걸어보라고 권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고."

문간에 엘리자베스가 서 있었다. 아침에 빌려 간 책을 돌려주러 왔다가 문 앞에서 발길을 멈춘 참이었다.

"아버지, 60파운드를 아버지께서 내시면 어떨까요."

"리지, 너는 네 어머니와 똑같은 자리에서 말을 시작하는구나. 나아가는 방향만 반대고."

"홀트 씨가 해마다 6파운드씩 십 년을 갚는 것으로 하고요. 그건 밭에 붙은 약속이 아니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빚이지요.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겨도 그 빚은 콜린스 씨에게 가지 않아요. 어머니와 우리 몫으로 남습니다."

베넷 씨가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토관은 콜린스 씨가 물려받고 60파운드는 네 어머니가 쥐는 셈이구나. 그자가 마른 밭을 걸어 다니면서 자기가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끝까지 모를 것을 생각하면 60파운드가 그리 아깝지는 않구나."

복도 저편에서 치맛자락 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베넷 씨! 방금 60파운드라고 하셨어요? 딸이 다섯인 집에서 60파운드요? 리지, 너는 옆에 서서 뭘 했니. 나는 오늘 저녁 내내 앓아누울 거예요."

"여보, 그 돈은 나갔다가 십 년에 걸쳐 당신에게 돌아옵니다. 당신 신경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점이 유감이지만."

계약서랄 것도 없었다. 베넷 씨가 두 줄을 적고 날짜를 쓴 뒤 이름을 적었다. 홀트는 펜을 받아 제 이름 자리에 십자를 그었다. 잉크가 번지자 손등으로 꾹 눌러 닦았다.

창밖으로 홀트가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밭 한가운데 멈춰 서더니 뒤꿈치로 땅을 눌렀다. 물이 발자국에 고이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였다.

"저 상속 규정은 땅이 쪼개지지 말라고 만든 제도다." 베넷 씨가 말했다. "백 년 동안 아주 잘 지켰지. 그동안 저 아래 열두 에이커는 계속 젖어 있었고."

오후에 비가 다시 내렸다. 서재 문은 닫혀 있었다.


《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이 1796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쓴 소설이다. 처음 제목은 《첫인상》이었고, 1797년 11월 1일 아버지가 런던 서적상 토머스 캐델에게 원고를 보냈으나 읽지도 않은 거절 답장이 곧바로 돌아왔다. 오스틴은 1811년부터 이듬해까지 원고를 크게 고치고 제목을 바꿨다. 1813년 1월 28일 화이트홀의 토머스 에저턴이 세 권짜리 책으로 냈고 값은 18실링이었다. 익명 출간이어서 표지에는 《이성과 감성》을 쓴 사람이라고만 적혔다. 오스틴이 판권을 넘기고 받은 돈은 110파운드였는데 그가 부른 값은 150파운드였다. 같은 해 10월에 재판이, 1817년에 3판이 나왔다.

오스틴은 1813년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소설이 너무 밝고 재치가 지나쳐 그늘이 없다고 스스로 아쉬워했다. 지금까지 2천만 부 넘게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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