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소설 밖의 하루

손이 깨끗해진 조판공과 종이 위의 12글자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연작에서 홈스와 왓슨을 빌려 원작에 없는 안개 낀 하루를 쓴다

리지

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3

Illustration by Gemini

안개가 걷히기 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베이커가 221B의 창유리는 바깥이 노랗게 뭉개져 있었고, 난롯불은 아침에 한 번 뒤적인 뒤로 재만 붉었다. 홈스는 페르시아 슬리퍼 앞코에 담배를 채워 둔 채 소파에 길게 누워 있다가 몸을 반쯤 일으켰다.

"왓슨, 8시 20분에 저 계단을 저렇게 올라오는 사람은 밤을 새운 사람입니다. 열일곱 계단 가운데 어디쯤에서 한 번 멈췄지요. 올라올지 말지를 거기서 다시 정한 겁니다. 남편이 집을 나서기를 기다렸다가 온 것이고요."

허드슨 부인이 들여보낸 손님은 마흔 안팎의 부인이었다. 어깨에 얹힌 안개가 물기가 되어 있었고, 모자챙에서 떨어진 방울이 양탄자에 검은 점 두 개를 남겼다. 장갑은 손질이 잘되어 있었으나 오른쪽 엄지 끝만 닳아 있었다.

"파울러라고 합니다. 남편은 클러큰웰 인쇄소에서 활자를 뽑습니다. 19년째요."

부인은 앉지 않았다. 손가방의 쇠 물림쇠가 두 번 미끄러진 뒤에야 열렸다. "6주 전부터 남편 손톱에 잉크가 묻지 않습니다. 저녁마다 대야에 손을 담그고 씻어내는 데 10분이 걸리던 사람인데, 요즘은 한 번 헹구고 수건에 문지르고 맙니다. 그런데 토요일 주급 봉투는 38실링 그대로예요. 어제 조끼 주머니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종이 한 장이었다. 인쇄소에서 쓰는 거친 갱지였고, 접힌 자리가 닳아 솜털이 일어 있었다. 같은 글자가 종이 가득 되풀이되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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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입니까? 남편이 무슨 불온한 무리에라도 가담한 겁니까. 저는 밤새 그 생각만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홈스는 종이를 창가로 가져가 안개에 비춰 한참 들여다보았다. 확대경을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요 몇 주 동안 그 방에서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부인, 장갑 엄지가 닳았군요. 부군 웃옷을 손수 솔질하십니까. 어디가 닳습니까."

"팔꿈치요. 전에는 소맷부리만 해졌는데, 지난달에는 팔꿈치에 천을 대어 기웠습니다."

"서서 일하던 사람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홈스는 벨을 눌러 위긴스를 불렀다. 맨발로 계단을 뛰어 올라온 아이에게서 안개와 석탄 냄새가 났다. 그는 아이 손에 6펜스를 쥐여주며 말했다. "클러큰웰 그 인쇄소 옆 선술집으로 가라.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점심에 인쇄공 식사를 몇 그릇이나 내는지, 작년 이맘때는 몇 그릇이었는지 물어라. 값은 치르고 다른 말은 붙이지 마라."

부인을 돌려보낸 뒤 홈스는 오후 내내 바이올린을 무릎에 올려두고 줄을 뜯었다. 활을 잡지 않고 손끝으로만 소리를 내는, 생각할 때의 그 버릇이었다. 4시에 위긴스가 돌아왔다. 작년에는 점심마다 80그릇 가까이 나갔는데 요새는 30그릇 남짓이라고 했다. 홈스는 아이를 내보내고 창가에 한참 서 있었다.

부인이 저녁에 다시 왔을 때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홈스는 종이를 탁자에 펼치고 양 끝을 찻잔으로 눌러놓았다.

"이건 암호가 아닙니다. 자판입니다. 사람 손 대신 기계가 활자를 뽑는 자동 조판기가 그 인쇄소에 들어왔습니다. 왼쪽 첫 줄이 e t a o i n, 그 옆 줄이 s h r d l u입니다. 영어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글자부터 손이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해 둔 것이지요. 한 줄을 잘못 뽑으면 조판수는 손가락으로 그 2줄을 훑어내려 줄을 채우고 통째로 녹여버립니다." 홈스는 탁자 위에서 두 손가락을 두 줄 긁어 내리는 시늉을 했다. "부군은 그 손놀림을 종이에 적어가며 익히고 계셨습니다."

부인은 종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첫 줄을 따라 짚어보고는 손을 내렸다. "쫓겨난 게 아니었군요."

"봉투가 그대로인 것이 그 답입니다. 인쇄소는 아직 부군이 필요합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19년 배운 손이 아닙니다. 6주 배운 손가락입니다. 왜 말씀을 안 하셨는지는 부군만 아십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부군께서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까지입니다."

"모르는 척해야 할까요." 부인은 장갑을 벗어 손에 쥔 채 물었다.

"오늘 저녁에는 부군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식탁에 올려주십시오. 손이 깨끗해진 것은 칭찬하지 마시고요."

홈스는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범죄가 없는 사건에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부인이 종이를 도로 접어 가방에 넣고 계단을 내려간 뒤, 그는 창가에서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섯 번, 다시 여섯 번.

"왓슨, 저 순서를 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 모두가 조금씩 정했지요. 그 순서 앞에서 19년이 6주가 됐습니다."

그러고는 바이올린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활을 제대로 잡았다. 안개는 저녁이 되도록 걷히지 않았고, 가스등이 켜지자 창밖은 노란 벽이 되었다.


셜록 홈스 단편 12편이 1891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스트랜드 매거진에 다달이 실렸다. 조지 뉸스가 이를 묶어 책으로 낸 것은 1892년 10월 14일이고, 영국 초판은 1만부였다. 아서 코넌 도일은 앞서 낸 홈스 장편 2편의 원고료가 시원찮자 단편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1891년 1월 창간한 스트랜드의 편집자 그리너프 스미스가 원고를 받아 들고 그를 에드거 앨런 포 이후 최고의 단편 작가라고 불렀다. 도일이 받은 돈은 편당 30기니였다.

같은 인물이 매호 돌아오되 한 편 한 편이 그 자리에서 끝나는 형식이 잡지 판매를 끌어올렸다. 모두 왓슨이 1인칭으로 서술한다. 도일 자신이 꼽은 최고작은 "얼룩 끈"이었다. 홈스의 말로 널리 알려진 "친애하는 왓슨, 기초적인 것이지"는 원작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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