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흐름
30년 국채가 10년 국채보다 쌌던 36개월의 끝
2023년 6월부터 서른여섯 달 연속 30년물 금리가 10년물 밑돌아...초장기채 매수 떠받치던 보험 규제 완화

재정경제부가 국채시장 통계로 고시하는 국채수익률 표는 만기가 짧은 구간부터 긴 구간 순으로 나열된다. 지난 26일 자 표를 만기 순서대로 살펴보면 3년물이 3.817%, 10년물이 4.292%다. 이어 20년물 4.542%를 거쳐 가장 긴 만기인 30년물이 4.598%에 이른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금리가 차례로 높아지는 전형적인 계단식 구조다. 돈을 오래 빌릴수록 정부가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채권시장의 기본 원리가 작동한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해 이맘때 같은 표에서는 초장기물 구간의 금리가 거꾸로 내려앉아 있었다. 정부 입장에서 30년을 빌리는 비용이 10년을 빌리는 비용보다 더 낮았던 것이다.
이러한 금리 역전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통계의 월평균 금리를 살펴보면 2023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서른여섯 달 연속 30년물이 10년물보다 낮았다. 격차가 가장 벌어졌던 때는 2023년 10월로 10년물이 4.325%인데 30년물은 4.069%였다. 만기를 20년 더 늘려 쓰는 대가가 마이너스(-) 0.256%포인트였다는 뜻이다. 이 같은 역전 현상은 2017년 9월에 처음 나타났다. 그 뒤 올해 7월까지 107개월 가운데 73개월 동안 금리 역전이 지속됐다. 채권시장 참여자 대부분에게 이 역전된 구조는 예외가 아닌 상수에 가까웠다. 그러다 올해 6월 30년물이 10년물을 0.264%포인트 웃돌면서 비로소 정상적인 우상향 계단으로 돌아왔다.
초장기물 금리가 낮게 억눌려 있던 배후에는 뚜렷한 매수 주체가 있었다. 한국은 2012년에 30년 만기 국고채를 처음 발행했고 2016년에는 50년 만기까지 도입했다. 채무 만기를 길게 늘려 잡으면 해마다 빚을 갚고 다시 빌리는 차환 부담이 줄어드니 정부에는 이득이었다. 문제는 만기가 이렇게 긴 초장기채를 누가 소화하느냐인데 한국에는 그것을 반드시 사야 하는 매수자가 있었다. 바로 보험사들이다.
보험사들은 가격이나 금리 유불리를 따져 매수한 것이 아니었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 격차를 줄이라는 규제 기준을 맞추기 위한 매수였다. 2000년 전후에 판매한 확정금리 저축성 보험은 계약자에게 수십 년 뒤까지 돈을 지급해야 하는 약속이고 그 약속의 무게는 만기가 길수록 커진다. 2023년부터 시행된 새 회계기준과 신지급여력제도가 자산과 부채를 함께 시가로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부채는 30년 40년 뒤에 나가는데 자산이 10년에서 끝나는 회사는 금리가 조금만 움직여도 자본이 통째로 흔들리게 됐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만기가 가장 긴 초장기 국고채를 집중적으로 담았다. 채권 가격이 비싸든 금리가 10년물보다 낮든 무조건 담았다. 규제가 만들어낸 강제적 수요 앞에서는 가격 논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만기를 길게 가져갈수록 오히려 자금을 더 싸게 조달하는 기회를 누렸다. 3년 만기로 빌리면 3%대 후반을 물어야 했지만 30년 만기로 빌리면 그보다 낮은 금리로 30년간 자금을 묶어둘 수 있었다. 만기가 길수록 조달 비용이 낮아지는 시장 구조는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서른여섯 달 동안 시장의 당연한 기본 전제처럼 유지됐다. 정부의 재정 계산과 국고채 발행 계획의 만기 배분 역시 이 전제 위에서 짜였다.
보험사가 들이대던 규제의 잣대가 지난해 바뀌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0월 보험부채 할인율 현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최종관찰만기를 올해와 내년 23년으로 동결했다. 최종관찰만기는 보험사가 부채를 평가할 때 실제 국고채 금리를 적용하는 마지막 만기를 뜻한다. 이 기준을 24년으로 늘리는 시점은 2028년이고 30년에 도달하는 시점은 2035년이다. 만기를 한꺼번에 30년까지 확대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이 평균 19.3%포인트 급락한다는 계산이 근거로 작용했다. 보험사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 적용 속도를 늦춘 결정이었으며 금융위원회는 관련 발표에 "안착을 뒷받침합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도 안착의 숨통은 트였다. 대신 23년을 넘는 만기 구간은 시장 실거래 금리 없이 통계적 계량모형으로 채우게 됐다. 계량모형이 산출하는 구간을 맞추기 위해 보험사가 굳이 초장기 현물 채권을 매수할 이유는 사라졌다. 30년물과 50년물을 의무적으로 사들여야 했던 규제상의 유인이 10년 뒤로 미뤄진 셈이다.
보험사 내부의 자산 운용 사정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여 년 전 연 4~5% 금리로 사들였던 국고채 만기가 올해부터 대거 도래하는 가운데 일부 회사는 이미 자산 만기가 부채 만기보다 길어졌다. 이 상태에서 시장 금리가 오르면 자산 가치가 부채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한다. 초장기채를 사야 할 규제 유인이 사라진 자리에 추가 매수 시 손실을 보는 구조가 들어섰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장기 국채 금리가 급등한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30년물 금리는 19년 만에 가장 높고 일본과 영국의 장기물 금리 역시 수십 년 만의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 글로벌 금리가 일제히 오르는 상황에서 국내 보험 규제 하나만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글로벌 요인이 밀어 올린 것은 금리 전반의 수준이지 수익률 곡선의 기울기가 아니다. 금리의 절대 높이는 물가와 재정 요인이 밀어 올리지만 기울기는 그 나라에서 초장기 채권을 누가 얼마나 사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해 8월과 올해 7월의 월평균을 비교하면 3년물은 1.33%포인트 올랐고 30년물은 1.75%포인트 올랐다. 단기 금리를 밀어 올린 동력은 쉽게 설명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16일 기준금리를 2.75%로 올렸다. 그 힘으로 설명되지 않는 0.42%포인트가 30년 만기 구간에만 따로 붙었다. 미국 국채에는 애초에 이러한 역전 현상이 없었으니 뒤늦게 솟아오를 일도 없었다.
초장기 금리를 억누르던 규제의 무게가 사라지자 이제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이 남았다. 추가로 벌어진 0.42%포인트는 정부 재정에 고스란히 얹히는 이자 부담으로 돌아왔다. 국고채는 종목 이름에 해마다 지급해야 할 이자를 표시해 발행된다. 직전 30년물 지표종목은 국고03500-5603이었고 이달 4일 새로 발행한 30년물은 국고04500-5609다. 만기가 각각 2056년 3월과 9월로 불과 반년 간격인데 그사이 표면 이자가 3.5%에서 4.5%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올해 국고채를 225조7,000억원 한도로 발행하되 20년·30년·50년물을 35% 안팎 담겠다고 했고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탄력적 대응"을 이유로 그 비중에 5%포인트씩 여유를 뒀다. 계획대로 발행한다면 79조원어치다. 3년물보다 더 오른 몫을 0.3%포인트로 낮춰 잡아도 해마다 2,400억원의 국고가 더 나가며 그 이자 부담은 만기까지 매년 이어진다.
수익률 곡선의 정상화가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미국 재무부 집계로 지난 26일 미국 국채는 10년물 4.66%, 30년물 5.18%였다. 두 만기 간 0.52%포인트 차이다. 같은 날 한국은 0.306%포인트다. 주요국이 오래전부터 유지해 온 정상적인 기울기의 절반쯤을 이제 겨우 회복했다는 뜻이고 나머지 절반마저 벌어지면 정부의 이자 청구서는 다시 늘어난다.
보험사가 비운 초장기채 매수 공백을 대체할 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과제다. 30년이나 50년 만기 채권을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무조건 사들일 매수자는 규제가 등을 떠밀 때에나 나타난다. 연기금이든 외국인이든 수익성을 꼼꼼히 따져 투자하는 주체들이 그 자리를 메우면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는 지금까지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음 분기에 눈여겨볼 대목은 세 가지다. 30년물과 10년물의 격차가 0.5%포인트 선으로 더 벌어지는지, 최종관찰만기가 24년으로 늘어나는 2028년을 앞두고 보험사의 매수가 돌아오는지, 그리고 새로 발행되는 20년물과 30년물 종목명의 앞 네 자리에 표면금리가 몇 퍼센트로 찍히는지다.
국고채 수익률 표를 다시 들여다보면 계단은 이제 만기 순서대로 한 칸씩 올라간다. 지난 아홉 해 가까이 그 표를 지켜본 이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던 풍경이 마침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장이 정상을 되찾는 과정에서 비싼 청구서가 붙었을 따름이다. 초장기 금리가 억눌려 있던 동안 정부는 가장 만기가 긴 자금을 가장 값싸게 빌렸다. 그 구간을 짓누르던 힘은 시장 논리가 결정한 가격이 아니었으며 규제가 완화되자 금리는 곧바로 올라왔다. 지금 표에 찍힌 4.598%는 앞으로 30년 동안 정부가 해마다 부담해야 할 실질적인 이자 비용이다. 계단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 정부가 그 높아진 금리의 계단을 실제로 올라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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