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뒤의 숫자
주문 장부가 반년 사이 1조 6,000억 줄었다
77배라는 배수...잔고가 다시 늘어야 설명돼

비행기를 만드는 일은 느리다. 한국항공우주의 매출은 2015년 3조 397억원이었고 지난해 3조 6,964억원이었다. 10년 동안 22% 늘었다. 그사이 훈련기 T-50 계열을 경공격기 FA-50으로 개량했고, 국산 전투기 KF-21 양산 단계에 들어갔다. 보잉과 에어버스에 기체 구조물을 납품하는 사업도 함께 키웠다. 지금도 매출의 절반이 고정익, 4분의 1이 남의 여객기 부품이다.
주가는 그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 현재 146,400원으로 1년 전보다 54%, 3년 전보다 189% 높다. 시가총액 14조 2,704억원은 최근 1년 순이익의 77배이고, 자기자본 1조 8,973억원의 7.5배다. 지난해 순이익 1,873억원을 그대로 매년 번다고 가정해도 시가총액을 채우는 데 일흔 해가 걸린다.
방산은 수주 산업이라 그 격차를 미래 주문이 메워준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가장 먼저 볼 숫자는 수주잔고다. 이달 14일 나온 반기보고서에 그 숫자가 적혀 있다.
6월 말 수주잔고는 25조 7,502억원이다. 올해 1월 1일 27조 3,437억원에서 1조 5,935억원, 5.8% 줄었다. 상반기에 새로 받은 주문보다 납품해서 덜어낸 물량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회사는 보안을 이유로 계약별 내용을 밝히지 않지만 부문별 잔고는 공개한다. 국내방산이 6.8%, 완제기 수출이 9.0%, 기체부품이 2.4%, 위성 등이 13.1% 줄었다. 네 부문 모두다.
고객이 미리 준 돈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동 계약부채는 지난해 말 2조 1,405억원에서 1조 9,870억원이 됐다. 부채비율 447%의 상당 부분은 이 선수금이다. 이 항목이 줄었다는 것은 새로 시작하는 계약이 마무리되는 계약보다 적다는 신호다.
얼마 전 미국은 자국 해군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짓도록 문을 열었다. 방산 수출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좋고, 이 회사의 완제기 수출도 그 흐름 속에 있다. 다만 항공 쪽에선 그만한 호재가 아직 장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주가는 앞으로 받을 주문에 매겨져 있다. 77배라는 배수는 잔고가 다시 늘어나는 반기가 나와야 설명되는 숫자다. 그 확인은 다음 반기보고서에 나올 부문별 잔고 네 줄에 달렸다. 그 네 줄이 이번처럼 모두 마이너스라면, 그때 주가를 지탱하는 것은 실적도 잔고도 아닌 기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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