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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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집계하려 만든 정의가 토론을 틀어막는 방패로 변할 때

통계 작성용으로 마련한 반유대주의 잣대...캠퍼스 검열의 무기로 굳어져

리지

반유대주의의 무기화2분

2005년 미국 유대인 위원회(AJC)의 인권 변호사 케네스 스턴은 유럽 인종차별감시센터(EUMC)에 쓸 반유대주의 실무 정의 초안을 마련했다.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는 유대인 혐오 범죄를 일관된 기준으로 집계하기 위한 학술 도구였다. 목적은 통계 작성이었다. 차별받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듬은 짧은 문장에 불과했다. 이 문장이 훗날 어떤 엉뚱한 용도로 쓰이게 될지 그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반유대주의의 무기화는 이스라엘 정책 비판이나 시온주의 반대를 혐오 발언으로 몰아세워 정당성을 꺾는 수법을 뜻한다. 스턴 변호사가 2005년 통계 목적으로 마련한 이 문장을 2016년 국제홀로코스트기억동맹(IHRA)이 채택하면서 왜곡된 쓰임새의 길이 열렸다. 통계 작성용으로 만든 실무 정의에 각국 정부와 정치 단체들이 법적 효력과 행정 징계의 잣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IHRA가 채택한 11개 예시 가운데 7개(63.6%)가 이스라엘 비판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열리는 학술 토론과 학생 시위에 혐오 낙인이 찍혔다. 실제로 미국 행정부는 대학 지원금 삭감을 내세워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입을 막고 나섰다.

2023년 유대인 차별에 맞서 온 미국 인권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지도자 회의에서 발언하는 조너선 그린블랫 ADL 대표. 사진 메릴랜드 주정부(CC BY 2.0), 위키피디아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닌 원작자인 스턴 변호사였다. 그는 미국 의회 청문회와 일간지 기고문에서 "내가 쓴 정의가 대학 캠퍼스에서 원치 않는 비판 발언을 억압하는 무기로 악용되고 있다"고 거듭 증언했다. 혐오 범죄를 측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려던 학술 도구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학문의 전당을 검열하는 정치적 무기로 전락했다는 원작자의 뼈아픈 지적이었다.

하지만 무기화의 폐해는 한쪽에만 머물지 않았다. 반유대주의 비판을 마주할 때마다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며 "정치적 음모"나 "도구화"로 치부하는 역공도 번졌다. 실제로 영국 노동당을 뒤흔든 내홍에서 보듯 진짜 차별을 겪은 당내 유대인들의 절박한 호소마저 정적을 제거하려는 파벌 싸움의 음해로 묵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차별을 막으려는 외침과 그 외침을 정치적 흉기로 의심하는 냉소가 맞부딪치며 혐오의 실체는 점점 더 깊은 안갯속에 가려졌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기억하고 인종차별에 맞서는 일은 인류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그러나 도덕적 명분이 정치적 갑옷으로 굳어지는 순간 토론은 사라지고 진영의 구호만 남는다. 질문은 설 자리를 잃는다. 상대의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혐오의 낙인을 휘두르는 권력과 실제 피해자의 눈물을 정략으로 치부하는 방어는 서로를 부추길 따름이다.

스턴 변호사는 자신이 만든 문장이 비판적 사유를 질식시키는 법률 무기로 굳어지는 현실을 끝내 우려했다. 혐오를 집계하려고 마련한 문장에 정치적 표식을 덧씌우는 순간 그 정의는 피해자를 지키는 울타리를 벗어나 반대자를 겨누는 칼날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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