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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스라엘 구호 걸린 테헤란 한복판...2700년 이어온 히브리어 기도
혁명의 총성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공존...헌법이 보장한 의석과 시나고그 30곳

테헤란 도심 외벽에 거대한 반이스라엘 구호 현수막이 걸린 거리, 골목 안쪽 유세프 아바드 시나고그에서는 매주 안식일마다 키파를 쓴 유대인들이 모여 히브리어 성경을 펼친다. 이스라엘과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앙숙으로 맞서는 이슬람공화국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다. 이란 유대인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에서 풀려난 이래 2,700년 넘게 이 땅을 고향으로 삼아 살아온 공동체다. 중동의 대표적 반유대주의 국가로 꼽히는 이란에는 지금도 약 30곳의 시나고그에서 예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뿌리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군주 키루스 2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황제 키루스가 유대인을 해방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했을 때, 수많은 유대인은 귀환 대신 페르시아에 남는 길을 택했다. 구약성경 에스더서의 무대가 된 고대 도시 하마단에는 지금도 성경 속 인물인 에스더 왕비와 사촌 모르드개의 무덤이 남아 있다. 페르시아어와 히브리어를 섞은 고유 방언을 쓰며 이 땅에 정착한 이들은 한때 제국 인구의 20%를 차지할 만큼 번성했고, 국경이 수없이 바뀐 뒤에도 고향을 지켰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이 오랜 공존을 거칠게 흔들었다. 혁명정부는 이스라엘과의 연계를 문제 삼아 유대인 공동체 지도자이자 유력 실업가였던 하비브 엘가니안을 총살형에 처했다. 10만 명에 이르던 공동체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프랑스 망명에서 돌아온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유대인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유대인은 신을 모르는 시온주의자와 다르다"라고 선언했다. 모세를 억압받는 민중의 예언자로 인정한 이슬람공화국 헌법 제64조는 유대인에게 의회 고정 의석 1석을 보장했다.

그렇다면 국가가 그은 좁은 경계선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단순한 타협에 불과한 것일까. 서구와 이스라엘의 시선에 이들은 언제든 탈출해야 할 위태로운 소수자로 보인다. 하지만 이란 유대인들에게 이곳은 버리고 떠날 타향이 아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유대인 청년들이 징집돼 조국을 위해 싸웠고, 테헤란 당국은 전사한 유대인 군인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다. 공동체가 운영하는 유대계 자선 병원 사피르 병원은 찾는 환자의 95%가 가난한 무슬림 이웃이다.
물론 삶의 무게가 마냥 가볍지는 않다. 고위 군인이나 판사가 될 수 없는 법적 차별과 이스라엘 간첩으로 몰릴지 모른다는 감시의 시선은 늘 곁에 머문다. 살해된 군 사령관의 유족을 찾아가 조문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공개 비판하는 유대교 랍비의 성명 뒤에는 살아남기 위한 고단한 줄타기가 있다. "이곳이 우리의 집인데 무엇을 어쩌겠는가"라는 어느 주민의 말처럼, 이들은 적대의 구호 속에서 침묵과 순응으로 삶의 터전을 지켜왔다.
영화제작자이자 전 유대인 협회장 하룬 야샤야에이는 "호메이니는 우리를 시온주의와 섞지 않고 이란인으로 보았다"라고 회고했다. 혁명 정권의 깃발과 미사일에는 서로를 향한 파괴의 언어가 새겨지지만, 2,700년 전부터 이 땅의 흙을 밟고 기도를 올린 이들에게 페르시아는 지울 수 없는 고향이다. 테헤란 골목 안 시나고그에서 촛불을 켜는 손길에는 국가의 이념도, 지정학의 구호도 닿지 않는 삶의 내력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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