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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라는 뜻이었던 낱말이 세 대양에 닿는 나라 이름이 되기까지
1535년 강가에서 길을 묻다 들은 말이 국호로...뒤에 덧붙은 "자치령" 칭호는 1951년에야 떼어내
1535년 여름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오르던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강가의 원주민들에게 길을 물었다. 원주민들은 "kanata"라고 답했다. 세인트로렌스 이로쿼이어로 마을을 뜻하는 말이었다. 원주민들은 스타다코나라는 마을 하나를 가리켰지만, 카르티에는 추장 도나코나가 다스리던 영토 전체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1545년에 이르자 유럽에서 출간된 서적과 지도에도 세인트로렌스강 일대 전체가 "캐나다"로 표기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 국호는 10개 주와 3개 준주를 아우르며 대서양에서 태평양, 북으로는 북극해까지 뻗어 있다. 총면적은 세계 2위이고 해안선 길이는 24만 3,042킬로미터로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길다. 인구는 4,100만 명이며 수도는 오타와다. 국가 공식 표어는 라틴어로 "바다에서 바다까지"이지만 정작 국호의 뿌리는 여전히 마을에 닿아 있다.
한낱 마을을 가리키던 이름이 대륙으로 넓어지는 동안 이 나라에는 단 한 번의 독립전쟁도 없었다. 피를 흘리는 전쟁 대신 공식 문서의 낱말만 바뀌었다. 캐나다 역사의 결정적인 분기점은 대개 치열한 전투보다 법 조문 한 줄, 혹은 관성처럼 쓰던 표현을 거두는 결단에서 갈렸다.
1774년 제정된 퀘벡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7년 전쟁 끝에 1763년 프랑스 식민지 누벨프랑스를 통째로 넘겨받은 영국은 프랑스계 주민을 영국식으로 동화시키는 대신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프랑스어와 가톨릭 신앙, 프랑스 민법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했다. 퀘벡에서 독립운동의 불씨가 번지지 않은 데는 이 조문의 몫이 컸다. 그러나 바로 이 조문이 남쪽 13개 식민지의 거센 분노를 샀다. 한쪽을 달래려 넣은 문장이 다른 쪽에서는 영국을 향한 반감에 불을 붙였고 몇 해 뒤 미국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

캐나다의 공식 국호 역시 런던에서 확정됐다. 1867년 런던 회의에서 새 연방의 법적 이름으로 "캐나다"가 채택됐고, 자치령(dominion)이라는 칭호가 함께 붙었다. 대영제국 안에서 스스로 자치권을 행사하는 나라라는 뜻이었다. 332년 전 강가에서 잘못 옮겨 적힌 말이 대서양 건너 회의실에서 마침내 정식 국호가 됐다.
자치령이라는 칭호는 1951년에 내려놓았다. 루이 생로랑 총리는 하원에서 그 낱말이 더 이상 캐나다를 정확히 가리키지 못한다고 밝혔다. 연방정부 역시 앞으로 해당 명칭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82년 영국에서 헌법을 가져오던 해에는 국경일 이름마저 자치령의 날에서 캐나다의 날로 바꿨다.
강가에서 원주민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통나무집 몇 채였다. 그 말이 지금은 998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와 3개 대양을 가리킨다. 캐나다는 그사이 국호를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름은 그대로 둔 채 뒤에 덧붙었던 칭호만 하나씩 떼어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마을이라는 본뜻을 온전히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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