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바지를 그릴 수 없었던 화가들...신고전주의가 베낀 고대는 판화 속 고대
그리스는 오스만 영토라 가지 못해...손질된 판화와 로마 모작으로 세운 고대의 이상
1758년 스코틀랜드 화가 개빈 해밀턴은 시리아 사막에서 팔미라 폐허를 발견한 영국인 신사 2명을 그렸다. 그림 속 두 사람은 토가와 비슷한 아랍식 겉옷을 걸치고 서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날 실제로 입었을 옷은 바지였다. 바지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야만의 상징이었다. 화가들로서는 영웅적인 장면에 담을 수 없는 복장이었다.

신고전주의는 18세기 중반 로마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퍼진 양식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을 그대로 되살리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세운 독일 미술사가 빙켈만은 1755년 저서에서 "우리가 위대해지는 유일한 길은 옛사람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모방할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스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여서 화가들이 거의 발을 들이지 못했다. 유럽인이 접한 그리스 건축도 무너진 곳을 펴고 어긋난 부분을 맞춰 그린 판화뿐이었다. 회화의 사정은 더 열악했다. 그리스 회화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아 화가들은 도자기 그림과 얕은 부조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복원했다. 부족한 빈자리는 라파엘로의 화풍을 빌려 채웠다.
실제 유물이 땅속에서 출토된 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서 로마 시대 벽화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빙켈만은 그 소식을 알리는 데 관여하고도 정작 그림 앞에서는 냉담했다. 이상이 실물보다 앞서 자리 잡았으니 실물이 도리어 이상에 어긋난 탓이었다. 그는 그리스 미술에서 "마음만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본다고 썼다. 그렇게 상상으로 구축한 고대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다비드가 1785년 파리 살롱에 출품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인물들은 부조처럼 화면과 나란히 늘어서고, 뒤편의 어두운 아치가 그 구도를 단단히 받쳐준다.

팔미라 폐허의 두 신사가 걸친 아랍식 겉옷은 오늘날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남은 것은 당시 화가들이 부족한 자료로 지어낸 그리스의 이상이다. 그 이상은 오늘날 은행과 법원 정면에 기둥으로 당당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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