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사물의 원래 색 버리고 원색 칠한 "야수"들의 미술 혁명

비평가들의 조소에서 나온 멸칭...서양 미술의 새로운 혁명으로

박정우 작가

야수파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05년 10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살롱 도톤의 제7전시실은 소동에 휩싸였다. 전시실 중앙에는 조각가 알베르 마르크의 어린아이 몸통 조각과 작은 대리석 흉상이 놓여 있었고, 벽면에는 앙리 마티스와 앙드레 드랭의 유화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전시장을 둘러본 미술 비평가 루이 보셀은 일간지 질 블라스에 "야수들 속에 갇힌 도나텔로"라는 짤막한 평을 남겼다. 얌전한 고전 조각 주위를 맹수처럼 거친 그림들이 에워싸고 있다는 조롱 섞인 평가였다. 프랑스 비평가 카미유 모클레르는 "대중의 얼굴에 물감통 하나가 내던져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비평가들의 조소에서 나온 "야수(fauves)"라는 멸칭은 새로운 미술 혁명을 가리키는 이름이 됐다.

야수파 화가들은 사물이 지닌 본래의 색을 모방하기를 멈췄다. 당시 화단을 이끌던 인상주의가 야외의 빛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시각적 인상을 화폭에 붙잡으려 했다면, 마티스와 동료들은 눈앞의 대상을 그대로 옮겨 적는 재현의 관습을 깼다. 이들은 팔레트에서 물감을 정성스레 섞는 대신 튜브에서 갓 짜낸 선명한 빨강과 노랑, 코발트블루를 캔버스에 직접 짓이겼다.

화폭 속 나무는 푸른색으로 물들었고, 여인의 이마에서 코를 따라 얼굴 중앙으로 굵은 초록색 물감 띠가 내려갔다. 색채는 형태를 채우는 보조 수단에 머물지 않고 화가의 감정과 내면을 분출하는 독립된 주체가 됐다.

이 파격적인 도약은 스승의 가르침과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실험에서 비롯됐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의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마티스를 비롯한 제자들이 각자의 개성을 발전시키도록 자율성을 보장했다. 마티스는 훗날 모로가 제자들을 정해진 길 밖으로 이끌며 안주하려는 태도를 흔들었다고 회고했다.

마티스는 폴 고갱의 선명하고 표현적인 색채를 비롯해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양식을 실험하며 야수파의 색채 사용에 도달했다.

앙리 마티스가 1906년 발표한 삶의 기쁨. 위키피디아

이듬해 봄 앙데팡당전에 출품된 마티스의 대작 <삶의 기쁨>에는 야수파가 도달한 색채의 독립이 고스란히 담겼다. 붉고 노란빛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나체의 인물들이 자유롭게 춤추고 피리를 분다. 인물의 크기와 원근, 시점은 일관되지 않았고, 인물들은 입체감을 만드는 명암 대신 평평한 분홍, 초록, 노랑으로 채색됐다. 대담한 색면과 유려한 아라베스크 윤곽선이 화면에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평론가들은 평평한 색면과 파격적인 원색 배치에 다시 한번 경악했다. 하지만 색채를 사실적 명암의 그늘에서 건져 올린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젊은 전위 예술가들에게 깊은 충격을 던졌다.

앙드레 드랭은 파리를 벗어나 런던의 템스강에서도 대담한 색채 실험을 이어갔다.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의뢰를 받아 영국으로 건너간 드랭은 런던 특유의 짙은 안개와 회색빛 수면을 원색의 풍경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가 그린 <샤링 크로스 다리>에서 강물은 눈부신 노란색, 짙은 분홍색, 코발트블루의 굵직한 붓질로 묘사됐다.

마티스의 목가적 풍경에서는 인물과 나무가 넓은 색면과 굽이치는 선으로 이어진다. 드랭의 도시 풍경에서는 강물이 색이 다른 구역으로 나뉘고 그 위에 짧은 붓질이 나란히 놓인다.

앙드레 드랭이 1906년 런던 템스강을 그린 샤링 크로스 다리. 위키피디아

색채를 해방한 야수들의 질주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정식 선언문이나 엄격한 조직 없이 젊은 작가들의 색채 실험으로 뭉쳤던 야수파는 불과 세 차례 전시를 끝으로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색채의 자율성을 확인한 화가들은 각자의 조형적 탐구로 흩어졌다.

폴 세잔의 구조와 질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조르주 브라크는 피카소와 입체주의를 함께 개척했고, 드랭은 입체주의를 잠시 실험한 뒤 신고전주의 회화로 돌아섰다. 마티스는 평면적인 장식성과 색면의 순수한 균형을 탐구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단 3년 남짓 이어진 거친 원색의 실험은 서양 회화의 전환점을 마련하고 다음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이어졌다.

현대 패션에도 야수파를 직접 참조한 사례가 있다. 패션 브랜드 더 밤 컬렉티브는 2022년 "포비슴" 컬렉션을 선보이며 야수파의 감정적이고 비자연적인 색채 표현을 몸과 옷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네 번째 의상에서는 선명한 자홍색 드레스 위에 연두색 코트를 겹쳤다. 두 색을 넓은 면으로 맞댄 모습은 마티스의 풍경 속 색면 배치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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