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철책 대신 선인장을 둘렀다

후안 오고르만은 여러 색의 자연석과 청색 유리로 대학 도서관 외벽에 멕시코의 역사를 표현했다.

박정우 작가

멕시코 모더니즘4분

Illustration by Gemini

1932년 멕시코시티 남쪽 산앙헬에 철근 콘크리트 상자 두 채가 완공됐다. 르코르뷔지에의 기능주의를 따른 두 건물은 하나는 붉은색과 흰색으로, 다른 하나는 짙은 청색으로 칠해졌다. 지붕 위에는 두 집을 잇는 좁은 구름다리가 놓였다. 집 둘레에는 철책이나 벽돌 담장 대신 기둥 선인장이 줄지어 대지의 경계를 나눴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스튜디오 주택이자, 스페인어로 작업실이 딸린 집을 뜻하는 "카사 에스투디오"였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후안 오고르만은 멕시코 시골에서 쓰던 울타리 방식을 현대 건축에 적용했다. 선인장 울타리는 대지의 경계를 표시하면서도 건물 안팎의 풍경이 이어져 보이게 했다. 멕시코 모더니즘은 서구의 현대적인 조형에 토착 유산과 민중의 생활 재료를 결합한 20세기 예술 흐름이다. 멕시코 예술가들은 이 집에서처럼 현대적인 형식에 자신들의 역사와 생활을 반영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스튜디오 주택(1931~1932년). 후안 오고르만 설계, 사진 Randal Sheppard, CC BY-SA 2.0, 위키미디어 공용

혁명 이후 멕시코 예술가들은 오래된 토착 유산과 서민의 생활에 주목했다. 1921년 화가 아틀 박사를 비롯한 미술가들은 "멕시코 민속예술전"을 열고 흙그릇과 직물, 가구를 현대 디자인과 소규모 산업의 원천으로 제시했다. 일상에서 쓰는 물건을 새로운 문화와 생산 활동의 기초로 삼으려는 시도였다.

정부가 관공서와 학교의 벽면을 내주면서 이런 움직임은 공공 미술로 확대됐다.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벽화 화가들은 민중의 역사와 노동을 거대한 벽면에 기록했다. 대중은 부유한 수집가의 살롱을 찾지 않아도 예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예술가들은 토착 유산과 민중의 생활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데서 나아가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의 범위도 넓혔다.

건축가들은 서구 기능주의를 멕시코의 환경에 맞게 적용했다. 오고르만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얻는다는 기능주의 이론을 따르면서도 벽에는 민중문화에서 가져온 색을 사용했다. 카사 에스투디오에서는 리베라의 작업실에 공장식 톱니 지붕의 창으로 북쪽 빛이 들어오도록, 칼로의 집에는 청색 외벽을 두도록 설계했다. 작업실의 채광은 그림을 그리는 데 맞추고, 외벽의 색과 울타리에는 현지의 생활문화를 반영했다.

콘크리트 상자에서 석재 모자이크로

주택 설계에 현지의 식물과 색채를 활용했던 오고르만은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중앙도서관에서 건축과 역사 벽화를 결합했다. 1950년 화산 암반 지대인 페드레갈에 새 캠퍼스를 건설하면서 도서관 공사도 시작됐다. 오고르만은 구스타보 사아베드라, 후안 마르티네스 데 벨라스코와 함께 건물을 설계했다. 책을 보관하는 10개 층의 서고에는 창문을 내지 않고 도서 보존에 필요한 빛과 온습도를 관리하도록 했다.

서고 외벽 네 면의 면적은 약 4000제곱미터였다. 오고르만은 앞서 리베라의 아나우아칼리 박물관 작업에서 색돌로 모자이크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외벽 전체를 덮을 수 있도록 벽화 도안을 실물 크기로 그리고 도안에 맞춰 돌을 배열한 콘크리트 판을 제작해 벽에 부착했다. 책을 보관하는 건물의 넓은 외벽은 역사를 이미지로 표현하는 공간이 됐다.

모자이크의 주재료로는 멕시코 여러 지역에서 구한 여러 색의 자연석을 썼다. 청색 부분에는 색유리를 잘게 부숴 사용했다. 오고르만은 야외 벽화를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재료를 선택했다. 돌과 유리 자체의 색으로 이미지를 구성해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는 문제를 줄이려 했다.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중앙도서관 벽화 "문화의 역사적 표상"(1951~1953년). 벽화 후안 오고르만, 사진 Muñoz LC,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오고르만은 북쪽 벽에 물의 신 틀랄록과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을 비롯한 콜럼버스 이전의 토착 신화를 표현했다. 남쪽 벽에는 정복과 식민지 시대의 종교·과학을 배치했다. 동쪽 벽에는 혁명과 현대 사회를, 서쪽 벽에는 대학과 현대 멕시코를 담았다. 멕시코에서 구한 돌로 색을 내 네 면에 서로 다른 시대의 도상을 표현한 구성이다.

오고르만은 북쪽 벽의 이미지에 토착민이 역사와 신앙을 기록한 그림문서인 코덱스를 활용했다. 오고르만은 이 벽이 옛 그림문서를 보관하던 "책의 집"을 연상시키도록 구상했다. 현대식 도서관의 기능과 토착 사회의 기록 문화를 연결한 것이다. 이처럼 벽화의 역사적 이미지는 건물의 용도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런 조형의 영향은 오늘날 호텔 실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 라파스에 2021년 문을 연 바하클럽 호텔의 인테리어를 맡은 디자인 스튜디오 Jaune은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멕시코시티 자택에서 빛과 자연 재료, 강한 색채를 활용한 방식을 참고했다. 옛 저택에 현대식 건물을 증축한 호텔 내부에는 붉은 테라조 바닥과 목재, 직물을 사용했다. 멕시코 도자기에서 익숙한 녹색과 붉은색으로 꾸민 새 호텔의 실내를 전통 도자기 램프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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