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토성에서 온 외계인을 자처한 흑인들...아프로퓨처리즘이 세운 역사의 전복
노예선에 실려 과거 지워진 상처를 우주선과 신시사이저로 직시...블랙 팬서와 테크노로 이어진 조형의 생명력

1950년대 미국 시카고의 클럽 무대에 황금빛 우주 모자와 고대 이집트 망토를 두른 흑인 음악가가 등장했다. 재즈 건반 연주자 선라는 자신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우주 저편 토성에서 날아온 외계인이라고 평생 주장했다. 흑인 노예의 후손이 고향 아프리카의 흙이 아닌 머나먼 우주 행성을 고향이라 부르며 전자 건반을 두드리는 광경은 당대 대중에게 기이한 충격이었다.
선라의 이 우주 신화는 아프로퓨처리즘이라 불리는 예술 사조의 출발점이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의 흑인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노예무역으로 끊긴 자기 역사를 되찾으려 우주선과 외계인 같은 미래 기술을 그리는 공상과학의 상상력을 빌려온 흐름으로, 1993년에야 미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데리가 여기에 이 이름을 붙였다. 이 기묘한 음악적 선언은 1970년대에 이르러 거대한 조형 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록 밴드 리더 조지 클린턴은 번쩍이는 은빛 우주선 모형을 무대 위에 내려놓고 크롬을 입힌 우주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재즈 거장 허비 행콕과 마일스 데이비스 역시 전자 건반과 신시사이저를 끌어안으며 미래적인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앨범 표지에 담았다. 당대 서양 백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공상과학의 기계 문명과 전자 음향을 흑인 예술가들이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주류 문화계는 오랫동안 이를 싸구려 키치나 현실 도피로 치부했다. 1993년 미국의 문화비평가 마크 데리는 에세이 "미래로의 귀환"에서 흑인 문화와 공상과학의 결합을 아프로퓨처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과거가 의도적으로 지워진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렇다면 흑인 예술가들이 우주선과 외계인을 노래한 것은 현실의 참상을 외면한 도피였을까.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이론가 코드워 에슌이 짚었듯, 흑인 노예들은 대서양을 건너는 노예선에 실려 알 수 없는 신대륙에 내던져진 원조 외계인이나 다름없었다. 족보와 언어, 이름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낯선 땅에 떨어진 역사는 그 자체로 디스토피아 공상과학의 서사와 맞닿아 있었다. 아프로퓨처리즘은 노예무역으로 뿌리 뽑힌 디아스포라의 상처를 공상과학의 상상력으로 다시 쓰는 치열한 역사 전복이다.

이 사조의 시각적 조형 언어는 고대 신화와 첨단 미래 기술을 거칠게 충돌시키는 데서 힘을 얻었다.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의 거친 뼈대와 기호, 시각예술가 완게치 무투와 엘렌 갤러거의 사이보그 콜라주는 백인 중심의 우주관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차가운 금속성 기계 장치와 아프리카 토착의 주술적 상징이 뒤섞인 화면은 감상자에게 달콤한 미래 대신 낯선 긴장을 안겼다. 그 기괴하고 눈부신 파편들은 빼앗긴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동시에 그러쥐려는 치열한 조형적 저항이었다.
오늘날 아프로퓨처리즘은 영화 "블랙 팬서"의 첨단 왕국 와칸다와 팝 가수 자넬 모네의 사이보그 앨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실을 거쳐 대중문화의 가장 활력 있는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차가운 전자 비트에서부터 디지털 가상현실 속 사이버네틱스 조형에 이르기까지, 과거를 딛고 미래를 재구성하는 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토성에서 왔다던 선라의 선언은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상의 법과 역사가 흑인에게 온전한 인간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던 시절, 그는 우주라는 무한한 캔버스 위에서 자유로운 주권을 되찾고자 했다. 이들이 쏘아 올린 크롬 도금 우주선과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은 지워진 과거를 넘어 가장 대담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예술의 힘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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