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아카데미즘, 붓자국마저 지운 완벽주의가 할리우드 스크린에서 찾은 생명
1863년까지 붓질 금지한 에콜 데 보자르...규격화된 규범 버린 자리에 피어난 현대 영상의 시각 언어

1863년까지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교실에서는 학생들에게 붓을 쥐여주지 않았다. 학생들은 선과 명암으로 형태를 잡는 소묘만 그렸다. 석고상과 옛 판화를 베끼며 윤곽선을 익혔다. 붓을 들고 색을 칠하려면 학교 밖 화실을 따로 찾아가야 했다. 아카데미가 요구한 예술의 본질은 규격화된 소묘 실력이었다. 화폭에는 화가의 붓자국조차 남겨선 안 됐다. 도자기처럼 매끄럽게 표면을 다듬어야 했다. 이것이 이른바 "피니(fini)" 기법이다. 국가가 공인한 완벽의 표준이었다.
아카데미즘은 16세기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유럽 관립 미술 아카데미의 규범이다. 회화와 조각의 엄격한 양식을 뜻한다. 당시 국가와 아카데미는 중세 길드의 도제식 훈련을 대신해 교육을 체계화했다. 국가 질서에 맞는 공인 예술을 육성하고 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철저한 규격은 17세기 프랑스 왕실이 아카데미를 정비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당시 절대왕정은 예술을 장인들의 단순한 손기술에서 지식인의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그 대가로 모든 화풍과 주제를 국가의 질서 아래 통제했다. 가장 높은 자리는 도덕적 교훈을 담은 거대한 역사화가 차지했다. 초상화와 풍속화는 그 역사화 아래였다. 풍경화와 정물화는 가장 낮은 장르로 밀려났다. 매년 열리는 파리 살롱전은 국가가 승인한 규격품만을 거는 거대한 쇼윈도였다. 두 달 남짓한 전시에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그림이 빽빽하게 벽을 채웠다. 부르주아 수집가들은 살롱전에서 상을 받은 이 그림들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완벽이 상식이 되면 개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1816년 프랑스 낭만주의를 이끈 화가인 테오도르 제리코는 아카데미가 수천 명의 평범한 재능을 양산한다고 한탄했다. 매년 똑같은 구도의 그림만 쏟아져 나온다고 짚었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독창성을 잃어버린다"라고 비판했다. 화가들은 도덕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신화 속 매끈한 여성 나체를 끝없이 찍어냈다.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와 알렉상드르 카바넬 같은 당대 거장들이 시장을 독점했다. 그러나 화폭은 살아 있는 현실과 멀어졌다. 정해진 답을 가장 정밀하게 베끼는 우등생만 화폭 앞에 남았다. 생태계는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굳어갔다.
상식 너머의 질문은 전시장 밖에서 터져 나왔다. 1863년 살롱전 심사에서 출품작의 3분의 2가 탈락했다. 분노한 화가들이 항의하자 살롱전에서 탈락한 작품을 모은 전시인 낙선전이 열렸다. 에두아르 마네와 귀스타브 쿠르베를 비롯해 훗날 인상주의를 연 화가들이 매끈한 화폭을 거부했다. 이들은 거친 붓자국을 감추지 않았다. 야외의 햇살과 서민의 일상을 날것 그대로 캔버스에 올렸다. 아카데미즘의 매끄러운 완벽주의는 점차 "소방관 투구를 쓴 거만한 예술"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20세기 들어 모더니즘이 미술관을 장악하자 아카데미즘 회화는 하루아침에 낡은 키치로 전락했다. 한때 값비싸게 팔리던 대형 캔버스들은 미술관 수장고 구석으로 퇴출당했다.

그러나 아카데미즘이 벼려낸 시각적 환영의 기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순수 회화에서 쫓겨난 이 기술은 20세기 대중 영상 매체로 무대를 옮겼다. 화가 장레옹 제롬은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의 결투 구도와 빛의 배치를 화폭에 구현했다. 이 배치는 훗날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에게 직접 영감을 주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시각적 뼈대가 여기서 나왔다. 대규모 군중 구도와 극적인 명암 대비는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흠잡을 데 없는 인체 비례 역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물려받은 핵심 공식이었다.
오늘날 디지털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의 교육과정도 19세기 아카데미의 훈련법과 닿아 있다. 가상 공간에 3차원 입체 모형을 세우고 빛을 비추는 작업이 그렇다. 에콜 데 보자르가 집착했던 해부학과 기하학의 원리를 그대로 따른다. 규격에 갇혀 화단을 떠났던 19세기의 기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극장 스크린과 게임 화면 속에서 매일 수억 명의 눈앞에 새로운 시각 언어로 펼쳐지고 있다. 1986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은 반세기 넘게 수장고에 갇혀 있던 부그로와 카바넬의 대형 캔버스를 꺼내 인상주의 걸작들과 나란히 벽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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