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공화국의 수치라던 입체파, 의회의 호통 뒤로 부르주아 거실과 식탁보를 집어삼킨 반격

1912년 살롱 도톤 스캔들에 하원까지 퇴출 논쟁...신문지와 식탁보 붙이며 현대 생활의 기준 세워

리지

입체파3분

Illustration by Gemini

1912년 10월 5일 일간지 <르 주르날> 1면에 격렬한 공개 서한이 실렸다. 파리 시의원 장 피에르 필리프 랑퓌가 보낸 글이었다. 랑퓌 시의원은 그랑팔레에 해괴한 그림들이 걸린 것을 비판했다. 국민 세금으로 여는 가을 살롱전 공공 전시에 이런 그림을 거는 것은 "공화국의 수치"라고 주장했다. 랑퓌 시의원의 항의는 며칠 만에 하원 본회의장으로 번졌다. 하원 의원들은 국고 지원을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은 입체파 화가들을 전시장에서 내쫓아야 한다며 고성을 질렀다. 이때 프랑스 사회당 마르셀 삼바 하원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삼바 의원은 미술의 자유를 옹호했다. 당시 그는 "국가가 취향의 판관이 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입체파는 사물을 여러 시선에서 관찰한 기하학적 단면으로 해체해 평면에 재구성한 20세기 초 미술 운동이다. 스페인 출신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가 이 미술 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두 화가는 수백 년간 이어진 원근법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단일 시점의 규칙을 버렸다. 대상 주위를 돌며 관찰한 여러 시선을 한 화면에 겹쳐 담았다. 관람객은 캔버스 앞에서 쪼개진 형상과 마주했다. 어디가 앞이고 옆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후안 그리스가 대상을 각진 기하학적 단면으로 쪼개어 재구성한 회화 <피카소의 초상>. 위키피디아

하지만 하원이 소동을 벌이던 그해, 화가들은 이미 미술관 벽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그해 5월 피카소는 화실에서 붓을 거두었다. 피카소는 캔버스 위에 등나무 무늬가 인쇄된 식탁보 조각을 붙였다. 테두리에 밧줄을 두른 이 작품이 최초의 입체파 콜라주 <등의자가 있는 정물>이다. 이후 브라크는 나뭇결 벽지와 신문 조각을 도화지에 풀로 붙였다. 종이를 오려 붙이는 파피에 콜레는 물감의 환영에서 벗어났다. 실제 물건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여 대량생산 사회의 현실을 직접 담아낸 파격이었다.

논란이 벌어진 그해 살롱 도톤 전시장 한구석에는 기묘한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조각가 레이몽 뒤샹 비용과 앙드레 마르가 합작한 모델 하우스, <입체파 주택>이었다. 당시 관람객들은 석고 파사드를 지나 기하학적 꽃무늬 벽지와 각진 소파가 놓인 <부르주아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벽면에는 페르낭 레제와 알베르 글레즈의 그림이 걸렸다. 이때 레제는 마르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사람들이 입체파를 가정의 일상 풍경 속에서 보게 될 텐데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썼다. 결국 국가가 추방해야 할 괴물이라 부르던 전위 예술이 부르주아 거실 한복판으로 들어앉은 셈이었다.

파리 그랑팔레에 설치되어 실내 장식과 회화의 결합을 보여준 <입체파 주택의 부르주아 거실>. 위키피디아

입체파는 사물을 부수는 해체에 머물지 않았다. 당시 대상을 쪼개던 분석적 시선은 일상의 물질을 조립하는 손길로 이어졌다. 그 손길은 주거 공간의 질서를 짜는 작업으로 확장됐다. 캔버스를 창문 삼던 과거의 틀을 벗어난 시도였다. 현실의 재료로 자립하는 새로운 사물을 만들어낸 작업이었다. 피카소가 붙인 식탁보는 그림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었다. 뒤샹 비용이 세운 방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은 손으로 만지는 현실의 입체물이었다.

입체파의 실험은 화랑 벽면에 갇히지 않았다. 화랑을 넘어 일상의 풍경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실제로 부르주아 거실의 각진 장식과 대담한 면 분할은 1920년대 아르데코의 모태가 되었다. 이 흐름은 바우하우스와 현대 가구 디자인의 뼈대로 굳어졌다. 오늘날 모듈형 수납장과 포스터의 사진 콜라주는 이 형태 조립에 빚을 지고 있다. 또 컴퓨터 그래픽의 다각형 메시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당시 파리 의원들의 호통을 뚫고 입체파는 이미 식탁과 거실을 채우는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1912년 12월 3일 프랑스 하원은 마르셀 삼바의 연설 직후 살롱전에 대한 국고 지원 삭감안을 부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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