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공장주 저택 채운 사회주의자의 손길, 미술공예운동이 일상에 남긴 노동의 존엄

수작업의 순수성 고집하다 시장서 고립...대량생산과 손잡고 현대 디자인의 뼈대 세워

리지

미술공예운동3분

1851년 영국 런던 만국박람회장에는 증기기관이 쏟아낸 공산품이 가득했다. 하지만 유리 전시장 안에서 번쩍이는 도금과 조잡한 장식을 마주한 비평가 존 러스킨과 청년 윌리엄 모리스는 절망했다. 기계가 손을 밀어낸 시대의 물건들은 저급했다. 분업이 인간을 부품으로 전락시킨 공장의 삶은 비참했다. 옥스퍼드대 청년들은 시대를 향해 거룩한 디자인 전쟁을 선언했다. 중세 장인의 수작업을 복원해 노동의 존엄을 되살리고, 만인을 위한 정직한 생활용품을 빚겠다는 다짐이었다.

이 다짐에 따라 모리스는 화실을 벗어났다. 손수 흙과 나무, 염색 원료를 만졌다. 1861년 설립한 모리스 상회에서 그는 직조와 목판 인쇄를 익히며 장인들과 함께 땀을 흘렸다. 공방에서는 화학 염료 대신 호두 껍데기와 쪽에서 우려낸 자연의 색을 썼다. 시골 들판의 엉겅퀴와 장미 덩굴, 버드나무 잎을 관찰해 생명력 넘치는 평면 문양도 디자인했다. 가구 역시 화려한 장식 대신 참나무 나뭇결과 가죽의 질감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만드는 이에게는 노동의 기쁨을, 쓰는 이에게는 안식을 주는 물건이야말로 참된 예술이라는 확신이었다.

윌리엄 모리스가 정원 덩굴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대표작 벽지 <격자>. 위키피디아

하지만 노동자를 해방하겠다던 모리스의 이상은 시장의 냉혹한 벽에 부딪혔다. 숙련 장인이 천연 염료로 직물을 짜고 손으로 목판을 찍는 공정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했다. 완성된 벽지와 식탁보의 가격은 노동자의 몇 달 치 품삯을 훌쩍 뛰어넘었다. 만인을 위한 예술을 외쳤다. 그러나 정작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소비자는 모리스가 비판하던 공장주와 부유한 귀족들이었다. 거리에서 사회주의를 역설하던 모리스는 귀족의 저택을 장식하고 돌아와 "나는 부자들의 돼지 같은 사치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다"며 참담하게 자조했다.

장인들이 수동 베틀로 직물을 짜던 머턴 애비 공방 직조장.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미술공예운동은 부유층 저택만을 채운 이상주의자의 낭만적 도피였을까. 모리스와 장인들의 손길을 시대착오적인 과거 회귀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의 저항은 노동에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인간을 부속품으로 길들이는 생산 체제에 맞서 노동의 존엄을 지키려는 호소였다. 손으로 빚는 즐거움을 지키려던 찰스 애슈비의 공예 길드는 1908년 시골 공방에서 파산했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고민은 산업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생산하는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며 얻은 풍요가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이었다.

모리스 상회가 문을 닫고 길드들이 흩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뿌린 디자인의 씨앗은 기계의 품 안에서 싹을 틔웠다. 재료의 본성을 존중하고 쓸데없는 허식을 걷어내야 한다는 철학은 바다를 건넜다. 독일과 미국으로 퍼졌다.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의 건축가들은 모리스의 원칙을 이어받았다. 기계를 배척하는 대신 대량생산 기술을 활용해 모두를 위한 생활용품을 공급하자는 실용적 해법을 찾았다. 수작업의 순수성을 고집하던 모리스의 틀은 깨졌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으로 대중의 삶을 높이려던 꿈은 근대 산업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닿았다.

오늘날에도 미술공예운동의 유산은 일상 속에 숨 쉬고 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목재의 숨결을 살린 원목 가구, 자연의 잎사귀를 다듬은 포장지와 벽지 문양에서도 사물의 구조를 드러내려던 공예가들의 손길이 묻어난다. 스마트폰 화면의 간결한 그래픽 역시 마찬가지다. 1888년 11월 런던 뉴 갤러리에서 미술공예전시협회가 첫 전시를 열었을 때,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는 20년간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실감한다고 회고했다. 기계와 손 사이에서 고뇌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투쟁은 물건 하나에도 만드는 사람의 존엄이 깃들어야 한다는 명제를 문명에 새겨 넣었다. 미술공예전시협회는 1916년까지 열한 번의 전시회를 이어가며 손과 생활의 일치를 향한 공예의 궤적을 런던 거리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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