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통계 읽기

분할연금·재산분할이 연 경제적 독립...황혼 이혼, 신혼 사상 첫 추월

10년 새 1만건에서 50% 늘어 1위...분할연금 9만 명·자산 분할이 뒷받침한 독립

리지

시도/혼인지속기간(동거기간)별...3분

지난해 결혼 생활 30년을 넘긴 부부의 이혼이 1만 5,628건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결혼 4년 이하 신혼부부의 이혼(1만 4,392건)을 앞질렀다.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10년 전인 2015년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당시 신혼 이혼은 2만 4,666건에 달했다. 30년 이상 함께 산 부부의 이혼(1만 431건)보다 2.4배 많았다. 성격 차이를 견디지 못한 신혼의 위기가 이혼의 전형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그러나 이 통념은 통계 앞에서 뒤집혔다. 전체 이혼 건수는 2015년 10만 9,153건에서 지난해 8만 8,130건으로 19.3% 감소했다. 그사이 30년을 함께 산 부부의 이혼만 거꾸로 49.8% 늘어났다.

이 흐름은 인구동향조사의 시도/혼인지속기간별 이혼 통계에 드러난다. 혼인 기간 20년 이상을 묶은 이른바 황혼 이혼은 지난해 3만 2,297건을 기록했다. 전체 이혼의 36.6%를 차지했다. 이혼한 부부 세 쌍 중 한 쌍 이상이 20년 넘게 한집에 살던 사람들이다. 부부가 헤어지는 연령도 가파르게 올라갔다. 2000년 40.11세였던 남편의 평균 이혼 연령은 지난해 51.02세로 뛰었다. 남편 연령은 50세를 넘어섰다. 아내의 평균 이혼 연령도 36.54세에서 47.71세로 올랐다. 50세 턱밑까지 다가섰다.

30년 부부의 이혼이 늘어난 배경에는 가족 생애주기의 변화가 놓여 있다. 30년은 긴 시간이다. 결혼 초에 낳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얻어 독립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다. 양육과 뒷바라지라는 부부 공동의 짐을 비로소 내려놓는다. 그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온전히 둘만의 몫으로 돌아온다. 기대수명은 이미 80세를 훌쩍 넘어섰다. 자녀를 떠나보낸 뒤에도 30년에 이르는 긴 여생이 기다린다. 부모의 책임을 다한 뒤 마주하는 새로운 삶의 시간이다. 과거처럼 체념으로 버티기보다 각자의 길을 찾는 선택이 늘었다.

제도와 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감정의 변화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오랫동안 전업주부에게 이혼은 곧바로 빈곤에 빠지는 지름길이었다. 남편 명의의 월급, 퇴직금, 국민연금에 자신의 몫을 요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99년 도입된 국민연금 분할연금 제도가 물꼬를 텄다.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이면 배우자의 노령연금을 균등하게 나눠 받도록 법에 규정됐다. 분할연금 제도는 세월을 거치며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국민연금공단 통계를 보면 분할연금 수급자는 2015년 1만 4,829명이었다. 2024년에는 9만 1,294명으로 급증했다. 9년 만에 6.2배다. 수급자 열 중 아홉(87.7%)인 8만 65명이 여성이다.

사법부 판단도 경제적 자립을 뒷받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4년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배우자가 장래에 받게 될 퇴직급여와 공무원·군인 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에 들어간다고 판결했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해 전체 부부 자산의 30%에서 50%를 나눠주는 판결이 법원에 자리 잡았다. 주택 자산 가치가 오른 점도 힘을 보탰다. 30년 동안 원리금을 상환해 대출을 모두 갚은 세대다. 집을 처분해 절반을 쥐면 보증금을 치르고 작은 거처를 마련할 수 있다. 독립에 나설 물적 토대가 비로소 마련됐다. 자립할 자원이 없어 마지못해 이어간 혼인이었다. 자립할 자원이 마련되자 비로소 매듭을 풀었다.

30년 넘게 산 부부의 이혼이 신혼을 앞질렀다 (단위=건) 2025년 동거기간별 이혼 건수, 통계청 14,3920~4년 15,2315~9년 14,01610~14년 12,19415~19년 8,99420~24년 7,67525~29년 15,62830년 이상
동거기간 30년 이상 이혼은 2015년 1만 431건에서 2025년 1만 5,628건으로 50% 늘며 전 구간 1위로 올라섰다.

반면 신혼 이혼이 10년 새 41.7% 급감한 이면에는 청년 세대의 혼인 기피가 맞물려 있다. 취업난과 집값 상승으로 결혼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혼인 건수 자체가 가파르게 줄었다. 결혼하는 이들은 오랜 교제와 엄격한 계산을 거친다. 주거와 소득 기반을 갖춘 뒤에야 예식장에 들어서는 경향이 강해졌다. 초기 갈등으로 헤어질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결합이 줄어들었다. 부부 사이가 원만해져 신혼 이혼이 줄어든 게 아니다. 신혼 이혼의 모수가 되는 혼인 자체가 축소된 영향이다.

결혼 30년 부부의 결별은 늦은 독립이다. 연금과 자산 분할이라는 법적 안전망이 뒷받침한 독립이다. 평생 부양의 과업을 마친 이들이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홀로 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제도는 지금도 현실을 다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6년 10월부터 개정 국민연금법 시행령을 적용한다. 별거 등으로 실질적인 혼인 관계가 깨진 기간을 분할연금 산정에서 제외한다. 혼인 관계의 실질을 반영하려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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