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군중의 칼날에 찢겨나간 회랑 벽면...멕시코 벽화 운동의 결단

영웅 신화에 맞선 오로스코의 참호...거리의 벽면에서 피어난 민중의 역사

리지

멕시코 벽화 운동3분

Illustration by Gemini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는 1922년 멕시코시티의 유서 깊은 교육기관인 국립예비학교 회랑 벽면에서 군중이 칼과 돌로 깊이 긁어 놓은 벽면의 상처를 마주했다. 혁명의 승리를 그리라는 정부 기대와 달리 오로스코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병사들의 참혹한 참호를 벽면에 새겼다. 보수파 학생들은 벽화를 국가 모독이라 부르며 칼로 훼손했다. 오로스코는 훼손된 벽면을 1926년에야 덧칠해 완성했다. 멕시코 벽화 운동은 상류층의 살롱 예술을 배격하고 공공 벽면에 노동 대중의 현실과 역사를 기록한 비판적 예술 운동이다. 국가의 영웅 신화에 맞서 전쟁의 참상을 정면으로 고발한 벽화의 날카로운 긴장은 바로 국립예비학교의 긁힌 벽면에서 시작됐다.

내전이 끝난 뒤 출범한 멕시코 정부는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민족의 결속을 알릴 선전 도구가 절실했다. 공교육부 장관을 맡은 지식인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수도의 공공건물 벽면을 예술가들에게 내주고 국가 재건의 신화를 그리도록 후원했다. 관료들은 유럽 미술의 우아한 비례를 본뜬 고전적인 화풍을 바랐다. 하지만 유럽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전선에서 총을 들었던 동료들은 미술관 액자에 갇힌 살롱 예술을 단호히 거부했다. 화가들은 스스로를 하루 일당을 받는 기술노동자로 규정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화가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은 예술을 부유한 수집가의 사치품에서 해방시켜 거리를 오가는 대중의 공유물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디에고 리베라는 관공서의 거대한 석조 벽면에 고대 원주민 문명과 옥수수를 수확하는 농민의 굳은 손을 흙빛 안료로 채워 넣었다. 리베라는 메마른 벽에 젖은 석회를 바르고 마르기 전에 안료를 밀어 넣었다. 프레스코 기법으로 완성된 벽화는 지워지지 않는 공공의 역사책이 됐다.

<멕시코의 역사>.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 국립궁전. 위키피디아

화가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국가 찬가를 노래하지는 않았다. 디에고 리베라는 고대 문명의 영화와 농민의 노동을 서사시처럼 그려냈다. 반면 오로스코는 혁명이 남긴 참혹한 폭력과 권력의 위선을 고발했다. 가장 급진적인 화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는 자동차 도료와 분무기를 벽면으로 가져와 거친 질감으로 제국주의의 억압을 폭로했다. 세 거장은 거친 선과 강렬한 원색으로 복도를 지나던 시민들에게 안락한 위안 대신 시대를 묻는 질문을 던졌다.

<노예제 폐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할리스코 주정부청사. 위키피디아

국가가 통제하려 한 선전 벽면이 지배 질서를 뒤흔드는 비판의 장으로 변하자 정부 반발도 거세졌다. 관료들은 급진적인 메시지가 담긴 벽면에 흰색 페인트를 덧칠해 그림을 지웠다. 시케이로스는 체포된 뒤 국경 밖으로 추방됐다. 하지만 공공의 벽에 시대를 새겨 넣은 멕시코 화가들의 실험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공미술 사업과 소수자 벽화 운동에 강력한 불씨를 지폈다.

지배층의 거실을 벗어나 광장의 벽으로 나아간 멕시코 벽화 운동의 조형 언어는 오늘날 도시 골목마다 그려진 그래피티와 저항 예술 속에 뚜렷하게 살아 있다. 거대한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소외된 이웃의 얼굴을 새기는 현대의 거리 예술가들은 한 세기 전 비계 위에 올랐던 멕시코 벽화가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군중의 칼날에 훼손되면서도 거짓된 찬가를 거부했던 오로스코의 벽화는 지금도 멕시코 국립예비학교 벽면 한가운데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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