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살아있는 거북 등에 보석을 박았다...자연을 거역한 19세기 퇴폐주의
자연 모방을 거부하고 인공 장식에 집착...위선적 도덕 조롱하며 현대 시각 디자인으로 이어져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는 1884년 소설 "역로"를 펴냈다. 소설 속 귀족 데제생트는 방 안 양탄자가 칙칙하다며 거북을 샀다. 그는 거북 등껍질에 금박을 입히고 사파이어를 심었다.
살아 숨 쉬는 동물을 인공 장식품으로 개조한 일이었다. 번쩍이는 등껍질을 얻은 거북은 며칠 만에 보석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숨졌다. 자연을 억누르고 인공을 앞세운 이 기행은 퇴폐주의의 출발점이었다.
퇴폐주의는 19세기 말 유럽 예술가들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인공의 세공과 감각적 환상을 좇은 예술 사조다. 본래 "퇴폐"라는 말은 로마의 쇠망을 빗댄 비난이었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비평가 테오필 고티에는 이 멸칭을 도리어 표어로 삼으며 산업 사회의 과학적 진보 대신 인공물의 우위를 내세웠다.
벨기에 화가 펠리시앵 롭스는 보들레르의 시집에 그림을 실었다. 롭스는 관습적 도덕을 조롱하는 기괴한 판화를 남겼다. 그는 1878년 선보인 판화 "포르노크라테스"에서 눈가리개를 한 여인이 돼지를 이끄는 장면을 그렸다. 성스러움과 불경을 뒤섞은 이 화면은 파리 화단에 큰 충격을 안겼고 롭스는 인공의 환상이 자연의 질서보다 더 강렬하다고 여겼다.

퇴폐주의는 1890년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평론 "거짓의 쇠락"에서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적으며 예술이 오직 예술 자체만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삽화가 오브리 비어즐리는 이 생각을 흑백 펜화로 옮겼다. 그는 희곡 "살로메" 삽화에서 인물의 신체를 길게 늘이고 평면 곡선 문양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도덕적 교훈을 걷어내고 기이한 장식 자체를 탐닉한 작품이었다.
인공의 쾌락을 좇던 퇴폐주의 운동은 19세기 말에 저물었다. 위스망스는 가톨릭으로 귀의했고 잡지사를 이끌던 바쥐는 무정부주의로 기울었다. 하지만 조형 방식은 남았다. 본래 형상을 지우고 정교한 가공으로 감각을 홀리는 비어즐리의 비대칭 곡선은 1890년대 중반 아르누보 상업 포스터의 기본 도안으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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