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지 경제학

그림 이야기

왕립미술원 벽에 걸린 PRB 세 글자...뜻이 읽히자 흩어진 라파엘전파

1848년 미술원 학생들이 비밀리에 꾸린 7명의 모임...디킨스 혹평으로 이름 얻고 5년 만에 흩어져

리지

라파엘전파3분

1849년 런던 왕립미술원 전시장에 걸린 그림 몇 점에는 화가의 서명 옆에 세 글자가 더 적혀 있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이사벨라"와 윌리엄 홀먼 헌트의 "리엔치"에 붙은 PRB였다. 그 세 글자의 뜻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미술원 회원들에게 숨기기로 한 모임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숨긴 모임의 이름은 라파엘전파 형제단(Pre-Raphaelite Brotherhood)이다. PRB는 그 머리글자다. 1848년 밀레이의 부모 집에 화가 셋이 모여 만든 비밀 모임이었다. 그해 가을 조각가와 비평가가 더해져 7명이 됐다. 밀레이와 헌트는 그 미술원의 학생이었다. 미술원이 본보기로 삼아 가르치던 그림을 따르지 않겠다고 모임을 만들었다.

라파엘전파라는 이름은 라파엘로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이들이 되찾자고 한 라파엘로 이전의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 그림이다. 촘촘한 세부와 강렬한 색이 거기 있었다. 그 색을 얻으려고 헌트와 밀레이는 마르지 않은 흰 바탕에 물감을 얇게 겹쳐 올렸다. 색이 "보석처럼 투명"하게 남기를 바랐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1851~52년).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그린 그림 하나를 밀레이는 1850년 미술원 전시에 내걸었다.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다. 목수 작업실 바닥의 톱밥과 부스러기까지 그린 그림이었다. 붉은 머리 소년이 예수였다. 그 소년을 두고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그해 6월 잡지 하우스홀드워즈에 혹평을 실었다. 성모가 "프랑스의 가장 천한 선술집이나 영국의 가장 낮은 진 가게에서도 괴물처럼 눈에 띌 만큼 추하다"고 썼다.

존 에버렛 밀레이, "부모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1849~50년). 출처 위키피디아

혹평으로 그림이 유명해지면서 서명 옆 세 글자도 읽혔다. 이듬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미술원 전시평에서 이들을 "스스로를 PRB라 부르는 젊은 화가 무리"라고 적었다. 그 무리에게 "정신이나 눈의 이상한 병"이 잦아들 줄 모르고 번진다고 했다. 비평가 존 러스킨은 이 그림을 개인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이 비난에 맞서 더타임스에 편지를 보내 이들을 옹호했다.

이름이 알려진 그해에 창립 회원인 화가 제임스 콜린슨이 모임을 떠났다. 이 모임이 기독교를 욕보인다고 봤다. 러스킨의 아내 에피 그레이는 혼인 무효 판결을 받고 밀레이와 결혼했다. 밀레이는 그 뒤로 모임의 방식에서 멀어졌다. 창립 회원 두 사람의 누이인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1853년 시 한 편을 남겼다. "PRB는 쇠퇴기에 있다"로 시작해 "농익은 과일은 떨어지게 마련"으로 닫는 시였다. 창립 5년째였다.

1차 세계대전 뒤 이들의 그림은 감상적인 "예술 잡동사니"라는 말을 들었다. 평가가 되살아난 때는 1960년대다. 그 사이 창립 회원인 단테 게이브리얼 로세티는 공예가 윌리엄 모리스가 차린 장식미술 회사에 동업자로 들어갔다. 그에게 그림을 배운 후배 화가 에드워드 번존스도 함께였다. 모리스의 회사가 벽지와 천에 찍은 중세풍 무늬는 오늘도 커튼과 책 표지에 붙어 있다. 2012년 런던의 국립미술관 테이트브리튼이 이들을 다시 걸었다. 붙인 제목은 "라파엘전파: 빅토리아 시대의 아방가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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