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성자 얼굴 지운 검은 사각형...추상미술이 세운 현대의 시각 문법
1915년 말레비치가 내건 0의 캔버스...도시 신호와 앱 아이콘으로 이어진 시각 질서

1915년 12월 러시아 페트로그라드의 한 화랑, 전시장 모서리 가장 높은 자리에 캔버스 한 폭이 걸렸다. 러시아 정교회 전통 가옥에서 성화를 모시던 신성한 자리였다. 성자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흰 테두리와 검은 사각형 하나만 칠한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람객과 평론가들은 경악했다.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내건 이 그림은 추상미술(Abstract art)의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추상미술은 현실의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 선과 색채, 면 같은 순수한 조형 요소로 화면을 구성하는 미술을 말한다. 19세기 카메라가 등장해 사물을 정확하게 기록하자 화가들은 현실을 모방하는 일에 회의를 품었다.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사물의 형태를 먼저 지웠다. 그는 작업실 벽에 거꾸로 놓인 그림을 보고 형태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색채와 선의 조화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사물의 겉모습이 오히려 회화 본연의 조형적 힘을 가리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말레비치는 대상을 지우는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여 현실의 모든 형태를 없애고 최소한의 요소로 검은 사각형을 택했다. 그는 이 시도를 "절대주의(Suprematism)"라고 부르며 사물을 흉내 내지 않아도 면과 색, 선의 비례만으로 인간의 감정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피에트 몬드리안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추상화가였다. 그는 나무와 건물의 윤곽에서 곡선과 장식을 덜어낸 끝에 검은 수직선과 수평선, 삼원색 격자만 남겼다. 구체적인 사물을 걷어내자 화면에는 공간과 균형의 보편적인 질서가 드러났다.

화가들에게 이 조형 질서는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이었다. 미술 운동 "더 스틸(De Stijl)"의 동료 화가인 테오 판 두스뷔르흐가 화면에 대각선을 긋기 시작하자 몬드리안은 수직과 수평의 엄격한 조화가 깨졌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이들에게 추상은 감정에 치우친 즉흥적 낙서와 달랐고 화폭 안에서 엄격하게 지켜야 할 시각 규칙이었다.
추상미술의 조형 언어는 화폭에만 머물지 않았다. 독일 조형 예술 학교 바우하우스와 러시아 예술가들은 기하 형태와 선을 산업 생산으로 연결하며 색면과 격자 구조를 건축 설계와 가구 제작으로 넓혔다. 대상을 버린 회화의 실험이 현대 디자인의 바탕이 됐다.
1915년 러시아 화랑 모서리에 걸렸던 검은 사각형을 향한 조롱은 힘을 잃었다. 오늘날 지하철 노선도는 실제 지형 대신 원색의 직선과 꺾인 각도로 길을 안내한다. 스마트폰 화면의 앱 아이콘과 도로 표지판도 사물의 복잡한 겉모습을 지운 채 사각형과 원의 명확한 시각 대비만으로 필요한 뜻을 전한다. 100년 전 성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사각형의 배열이 현대 도시의 시각 신호를 움직이고 있다.
이 글이 어땠나요?
눌러 주시면 다음 글을 쓸 때 소중한 참고가 됩니다.


















